경색 정국에 오히려 암운이 덧씌워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6일 어렵사리 국회 3자 회담 자리에 마주앉았지만, 거의 모든 현안에서 현격한 인식 차이만 확인했다. 박 대통령의 완고한 입장을 직접 확인한 민주당은 반발과 투쟁의 강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여 추석 연휴 이후에도 상당 기간 정국 정상화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3자 회담은 정국 정상화를 위해 마련됐지만, 역설적이게도 여야의 현실 인식과 해법 사이의 간극만 확인했다. 서로가 이익의 조화를 찾는 절충의 장이라기보다 잘잘못을 따지는 논쟁의 장에 지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국정원 이슈, 민생현안,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파문 등 3대 정치현안을 두고 양보 없는 설전을 벌였다.
이는 대치 정국의 장기화를 예고한다.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난데다 향후에도 청와대와 민주당의 정면대립이 불가피해짐에 따라 사실상의 국회마비 상황 등 정국 파행이 연말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정면충돌한 현안들은 그 성격상 어느 한 쪽만 기존 주장을 굽히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김 대표는 회담 뒤 "천막으로 돌아가겠다"며 장외투쟁 지속 의지를 다졌고 민주당은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투쟁 전략 전면 재검토를 결의하고 나섰다.
특히 이날 회동에서 새누리당이 존재감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인 건 정국 정상화에 대한 기대치를 더욱 낮추는 요인이다. 청와대에 끌려 다닌다는 그간의 비판이 재확인됐고, 의회 파트너인 민주당의 변화를 끌어낼 만한 조정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의원은 "최소한의 중재 역할도 못할 거면 도대체 황우여 대표가 왜 참석했는지 모르겠다"며 "여야 관계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회담 결렬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청와대는 일방적으로 회담 형식과 일시를 제안한 뒤 민주당의 의제 조율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낮은 수준에서나마 합의문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은 선택지에 없었던 셈이다. 당연히 민주당도 기존 요구 수위를 낮추는 건 굴욕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한 정치평론가는 "양측의 대결적 자세로 보아 5년이 암울해 보였다"며 "기왕 회담 요구를 수용했다면 국정의 책임을 지고 있고 강자의 위치에 있는 박 대통령이 좀 더 유연성을 발휘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여야 모두 정기국회 공전이 장기화하는 데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어 최소한의 수준에서 국회 정상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 새누리당으로선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새해 예산안과 각종 민생ㆍ경제법안 처리에 있어 민주당 협조가 필수적이고, 민주당도 국정감사 등 '열린 기회'를 활용할 경우 실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가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충분히 입장을 밝힌 만큼 추석 민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국회가 일부라도 정상화될 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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