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정부는 지난해 9월 '카지노 사전심사제'를 도입했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자본의 카지노 설립 허가 여부를 사전 서류심사만으로 판단하는 제도다. 카지노 승인을 받으려면 3억 달러 이상 선투자를 해야 한다는 조건도 5,000만달러 이상으로 완화했고 심사청구 절차도 '민원신청' 방식을 택했다.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카지노 진입장벽을 확 낮춘 것이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제동이 걸렸다. 간단한 서류심사만으로 카지노 사업 허가권을 줄 경우, 이미 포화상태인 국내 시장에서 카지노가 무분별하게 난립할 수 있는 데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먹튀' 가능성까지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도 도입 이후 사전심사를 청구했던 외국계 업체 2곳은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카지노 심사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결국 지난 7월 "카지노 사전심사제의 형태를 민원방식에서 공고 방식으로 바꾸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문턱을 크게 낮췄던 MB정부 때와 달리, 박근혜정부에선 꼼꼼하게 따져서 적격여부를 판단하겠다는 게 핵심 골자다.
그런데 새로운 카지노 사전심사제 시행과 관련해 경제자유구역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카지노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사이에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
일단 연내 관련법령을 바꾼다는 데는 합의된 상태다. 김성진 산업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은 16일 "카지노 사전심사제 형태를 현행 민원신청 방식에서 정부공고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과 관련해 문체부와 구체적인 협의가 거의 마무리됐다"며 추석 이후 경제자유구역특별법(경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지노 사전심사제가 정부 공고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경우, 가장 달라지는 점은 설립 희망 업체들 간 경쟁 시스템이 사실상 도입된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선 일반 민원처리처럼 카지노도 설립을 원하는 업체들이 그때그때 신청서류를 내면 문체부가 심사를 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아무리 외자유치가 중요해도 국가경제와 국민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카지노 허가를 일반 민원과 동일하게 처리토록 한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새롭게 도입될 정부공고 방식에선 정부가 특정지역 내 카지노 수요 파악을 먼저 한 다음, 공고를 통해 신청을 받아 사업자를 선정하게 된다. 희망업체간 비교ㆍ경쟁이 가능해지는 만큼, 좀 더 양질의 외국자본에게 카지노 허가권을 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산업부와 문체부 사이에 이견이 엿보이는 건 시행시기 부분이다. 문체부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공고제가 시행돼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산업부는 빨라도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개정안의 국회통과, 시행규칙과 시행령 마련 등의 작업을 거쳐야 하므로 당장 시행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문제는 새 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기존의 사전심사제도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만약 특정 외국자본이 경제자유구역 안에 카지노를 짓겠다고 신청할 경우, 현행 제도에 따라 요건을 갖추면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문체부는 "어차피 공고제로 바꾸기로 한 만큼 사전심사제에 따라 인허가절차가 진행되어선 안 된다. 없어질 사전심사제에 의해 카지노 허가가 나는 것을 막으려면 공고제 시행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영종도에 카지노를 짓겠다고 올해 초 신청했다가 지난 6월 '신용등급미달'을 이유로 부적격판정을 받았던 중국ㆍ미국계 자본의 합작사인 리포&시저스 컨소시엄가 조만간 재심사를 청구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과연 이 경우 현행 사전심사제에 따라 인허가절차를 진행해야 할지 여부가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공고방식이 이미 확정돼 시행만 앞둔 상황에서 현행 사전심사제를 통해 특정 업체에 허가권을 내준다면 특혜시비가 불거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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