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가 저자들의 압박에 밀려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킨 고교 한국사 교과서를 발행하기로 16일 입장을 바꿨다. 저자들은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이념 논쟁으로 비화시키며 교과서 발행을 강행하고 있다.
교학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양진오 대표 등 교학사 측과 대표 저자인 권희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와 이명희 한국현대사학회 회장(공주대 교수)은 지난 13일에도 만나 의견을 조율했으나 고성만 오가다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저자들은 "교학사가 발행을 철회하면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와 저자들의 계약에는 '발행사 폐업 등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판을 포기할 수 없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교학사 관계자는 "이미 2~3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한데다 만약 민사소송에서 져서 보상까지 하게 되면 회사에 미치는 부담이 상당하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교학사 측은 "불매운동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가 출판한 다른 교과서에 대한 채택 거부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며 저자들을 설득했지만, 결국 매출 타격과 이미지 추락 등 손실을 감수한 채 교과서를 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오류∙표절 등 지적에 대해 양 대표는 "어떤 내용이 잘못됐는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집필진이 검토하고 있다"며 답변을 피했다.
'교육부 눈치 보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지난 11일 검정에 합격한 8종 교과서 모두를 10월말까지 수정ㆍ보완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문제의 진원지인 교학사가 교과서를 내지 않을 경우 교육부가 난감해지기 때문이다. 양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수정ㆍ보완을 거쳐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교육부의 최종 판단에 따라 출판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결정권을 교육부에 미뤘다.
이에 따라 교학사 교과서의 활용 여부는 일선 학교들의 채택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사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포함해 전국의 중ㆍ고교 역사교사 76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의 99.5%(760명)가 교학사 교과서가 '고교 교과서로서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전교조 소속이 아닌 교사(159명)들만 따로 봐도 97.2%가 부적절하다고 응답해 특정 성향이나 이념을 넘어 교과서의 수준 미달을 문제삼고 있음을 보여줬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은 '이념논쟁'에 불을 지필 태세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극복 대상으로 설정하는 '반(反)대한민국적 역사관'은 사라져야 한다"며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민주당 국회 교육문회체육위원회와 역사교과서 친일독재 미화왜곡 대책위원회는 "교육부의 검정취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교육부가 검정 합격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장관 고발, 교과서 채택 및 출판금지를 위한 법적 조치, 장관 해임결의안 조치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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