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12m, 세로 4.5m. 이달 초 영국 테이트미술관에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온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2007)'은 거짓말 좀 보태면 작은 숲만하다. 캔버스 50개를 이어 붙여 만든 그림은 벽 하나가 비좁다는 듯 양 날개를 구부린 모습이다.
호크니의 그림은 점점 커지고 있다. 1960년대 미국 로스앤젤레스 고급 저택의 수영장을 배경으로 '불온한 평화로움'을 그렸던 그가 나이 들어 고향인 영국 요크셔로 돌아와 대작을 내놓은 것에 대해 말이 많을 법하다. 새로운 것이 없으니 크기로 승부한다, 로스앤젤레스 시대에 이어 요크셔 시대를 만들려고 한다는 입방아가 그것이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50개의 캔버스를 넘나드는 나뭇가지들은, 하나의 풍경을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 캔버스 경계마다 뚝뚝 잘려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림은 대가의 말년을 장식하는 용도로는 적합치 않아 보인다. 호크니는 왜 스스로 통제하기도 힘든 거대한 그림에 매달리는 것일까?
수영장 시리즈로 유명해진 60년대부터 대형 풍경화를 그리는 현재까지, 소재는 계속 바뀌었지만 그림 속 강박의 내용은 동일하다. '시각적 진실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 그는 인간의 눈이 미처 담지 못한 대상의 진실을 구현하고 싶어했고, 이를 위해 오래 잡았던 붓도 던질 만큼 과격한 연구자였다.
80년대 초반 시작한 사진 콜라주 작업에서 호크니는 단일 초점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한 현실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풍경을 다양한 각도로 촬영해 짜깁기했다. 사진 가장자리를 경계로 뚝뚝 끊어진 이 풍경 사진은 '20세기 초의 입체파 회화를 사진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작가 본인으로부터 외면 받았다. 사진에는 감정이 배제돼 대상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진실을 담보하는 기능은 회화가 사진보다 우월하다"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치며 2000년대 초 카메라를 버리고 회화로 돌아갔다.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은 평생 진실을 좇다가 어느새 70대 중반에 접어든 집요한 연구자의 종착지에 가깝다. 그는 사진이 담지 못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캔버스를 차에 싣고 야외로 나가 작업했다. 추위와 싸우며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모습은 다큐멘터리 영화 에 담겨 전시장 한 켠에서 방영 중이다.
6주간 작업실과 숲을 바지런히 오가며 그린 그림을 통해 그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을까. 아니, 무엇이 표현돼야 마땅하다고 여겼을까.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 그리는 이를 엄습한 추위, 시시각각 바뀌는 빛의 움직임, 고향으로 돌아온 늙은 예술가의 평안. 그는 평론가 마틴 게이퍼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림이 아닙니다. 당신은 이미 그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년 2월 말까지 전시되는 호크니의 그림은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무료로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8~22일 닷새간 과천관과 덕수궁관의 모든 전시를 무료 개방한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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