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감찰 결정에 맞불을 놓다가 물러선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언론의 오보 해프닝인가.
19일 오후 채동욱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 김광수 공안2부장에 대해 감찰 지시를 내렸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채 총장의 해명에 따라 사실무근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갔던 이날 오후의 대검찰청 내 정황이나 채 총장의 비공식 발언을 볼 때 '아니 땐 굴뚝에 난 연기'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
채 총장이 김 부장에 대해 감찰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오후 1시 23분 연합뉴스 보도로 처음 알려졌다. 이날 오전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등에서 채 총장에 대한 사찰 파일을 만들었고, 김 부장이 깊숙하게 연루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직후여서 파장은 컸다.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제기와 법무부 감찰 결정의 배후에 특정 세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채 총장이 '맞감찰'로 정면 돌파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사찰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채 총장에 대한 음해과정과 배후가 속속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보는 눈도 많았다. 일부 검사들 사이에서 "채 총장이 반격을 위한 맞불 작전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두 시간이 지난 오후 3시 29분 채 총장이 구본선 대검 대변인을 통해 "오늘까지 김광수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 검사에 대한 감찰을 지시한 바 없다"고 밝히면서 파문은 가라앉았다. 구 대변인은 "총장이 길태기 대검 차장검사에 전화해 알려온 사실"이라며 채 총장이 직접 보도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채 총장의 부인을 '지시가 없었다'가 아닌 '지시를 번복했다'는 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사의를 표명한 상태에서 감찰을 지시하는 것은 청와대나 법무부에 대놓고 반기를 든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끼고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발견된다. 채 총장은 한국일보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감찰 준비를 위한 준비 지시를 했다'고 밝혔고, 채 총장에 뒤이어 사의를 표명한 김윤상 대검 감찰1과장이 오후에 출근해 감찰본부장과 긴급 회의를 갖는 장면이 목격됐다. 보도 직후 채 총장이 "(감찰 여부는) 대변인과 상의하겠다"고 한 부분도 미심쩍다. 김 과장은 "아직 사표가 수리가 안 됐으니 (감찰을) 내가 맡아서 하겠다"며 출근을 했다는 얘기가 대검 내로 퍼지기도 했다.
한 대검 관계자는 "감찰 수준은 아니고, 박지원 의원의 문제 제기가 있고 하니 사실을 파악해보라는 정도의 지시로 알고 있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또 다른 검찰 간부 역시 "이미 사퇴까지 한 사람이 어떻게 감찰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겠나. 법무부 감찰이 부당하다고 사퇴해놓고, 자기도 근거 없는 감찰을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뭔가 잘못 알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 총장의 감찰 지시 파문을 뺀다면 검찰은 조용했다. 13일 채 총장의 사퇴 표명 이후 사직을 밝힌 검사는 김윤상 과장뿐이고, 서울서부지검 외 평검사 회의 개최도 감감무소식이다. 청와대와 법무부가 사표 수리에 앞서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상황에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검찰이 입을 후유증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검 관계자는 "아무래도 총장 개인 신상 문제로 촉발된 사태라는 점에서 검찰 전체의 목소리를 내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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