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는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의 표명에도 불구하고 '혼외 아들' 의혹에 대한 사실상의 감찰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실 확인도 없이 총장을 몰아낸 데 대한 비판 여론과 청와대 배후설 확산을 의식한 궁여지책의 성격이 짙다. 그러나 의혹의 진위를 밝힐 결정적 수단인 유전자 검사 등을 강제할 수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진상 규명을 명분 삼아 채 총장에 대해 계좌 추적과 통화내역 조회 등 먼지떨이 식 부관참시(剖棺斬屍)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채 총장 감찰 임무를 맡은 안장근 감찰관은 15일 북유럽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경기 과천시 법무부 청사로 출근해 감찰 업무에 착수했다. 감찰관실의 수사관들도 이날 상당수 출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는 우선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한 임모씨 등에 대한 탐문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는 감찰 전 단계인 진상 규명 단계라고 보면 된다"며 "혐의가 있으면 감찰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혼외자 의혹은 정황 증거가 있더라도 유전자 검사 외에는 사실을 확정할 방법이 없다는 점에서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당초 13일 감찰 착수 발표는 채 총장의 자진사퇴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나, 청와대가 여론을 의식해 "진상규명 후 사표수리"로 입장을 바꾸면서 법무부가 진상규명 시늉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법적으로 아이의 유전자 검사는 보호자인 임씨가 동의하지 않으면 수사나 감찰로 강제할 수 없다. 한마디로 감찰의 실익이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채 총장이 지난 12일 정정보도 청구 소송 계획과 더불어 유전자 검사도 받겠다고 밝힌 터라 굳이 법무부가 나설 계제도 아니었다.
박은재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이 전날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린 글에서 "유전자 감식, 임모 여인의 진술 확보가 감찰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그거 수사로도 불가능합니다"라며 황교안 법무부 장관에게 해명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단장은 이어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감찰에 대한 치밀한 생각도 없이 감찰을 지시한 것이라면 그건 보통문제가 아니다"며 "대다수의 국민이 특정 세력이 국정원 댓글 사건(수사)으로 정권에 밉보인 총장의 사생활을 들추어 총장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유전자 검사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법무부가 채 총장과 임씨의 금전거래 여부를 밝히겠다며 계좌 추적 등에 나선다면 더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진상 규명 단계에서 어느 정도 혐의가 있다고 보고 감찰로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계좌 추적, 통화내역 조회 등 수사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말이 감찰이지 사실상 검찰총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수사가 이뤄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설령 친자 여부를 밝히지 못한다고 해도 이런 감찰을 통해 채 총장의 꼬투리를 잡을 다른 첩보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에 정권으로서는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혼외 아들'의혹을 끈질기게 제기해 온 조선일보가 14일 "법무부 차원의 진상조사 때는 통화내역, 금전거래부터 살피기 때문에 진실 규명은 시간문제"라고 보도한 배경에도 눈길이 쏠리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혼외자 의혹이 어떻게 유전자 검사 없이 금전거래, 통화내역으로 확인되느냐"고 비판했다.
한편 13일 법무부의 느닷없는 감찰 발표는 황 장관과 국민수 법무부 차관,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 등 3명만 사전에 논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외 법무부 및 대검 고위 간부들조차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여서 졸속 발표라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김청환기자 ch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