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총장을 스스로 물러나게 한 조선일보의 '혼외 아들' 의혹 보도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에 청와대는 어디까지 개입한 것일까. 청와대와 법무부는 배후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사태의 전개에 청와대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일부 확인되면서 '의혹 보도에서 사퇴까지' 일련의 과정이 몇 달 전부터 사실상 청와대가 기획한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조선일보가 채 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을 보도한 직후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채 총장 내몰기 작전'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채 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즉 대선 개입 혐의로 기소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 및 여권과 마찰을 빚은 것은 이미 알려진 일. 이어 "채 총장이 사사건건 대통령의 뜻과 충돌하는 수사를 하고 있어 자리가 위태롭다"는 소문까지 나돌던 중에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일각에서는 채 총장이 어떤 사유로든 추석 전에 물러나게 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흘러 나왔다.
이 무렵 검찰은 이미 '채 총장 흔들기'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잔뜩 긴장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기수 후배인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검찰 수사 조율 실패로 경질되고 깐깐한 원칙론자로 알려진 홍경식 수석이 새로 임명된 것을 계기로 이 같은 시도가 임박했다는 경고음이 검찰 내부에서 일기도 했다.
이 같은 정황은 조선일보의 첫 보도 직후 채 총장이 보인 반응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채 총장은 혼외 아들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보도의 저의와 배경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신상에 관한 의혹 제기지만 결국 사퇴를 압박하려는 '의도된 보도'라고 판단한 것이다.
보도 이후 청와대의 행보도 청와대의 개입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는 게 검찰 내 시각이다. 보도와 동시에 청와대가 직접 공직기강 감찰에 착수한 것이나, 홍 수석이 채 총장을 만나 해명을 듣고는 곧바로 법무부에 감찰 지시를 내린 것은 이미 계획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채 총장의 해명을 들은 것은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채 총장이 아무리 "사실무근"이라고 강조하고, 정정보도 청구 소송과 함께 유전자 검사까지 받겠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무부의 감찰 지시 등 본격적인 사퇴 압박이 러시아 등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이뤄졌다는 점에서 청와대 측에서 채 총장에게 "대통령의 뜻이다"고 전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채 총장 사퇴의 파장이 심상치 않자 15일 "진상 규명을 먼저 하고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그러나 이 대목도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유전자 검사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채 총장을 궁지에 몰아넣을 다른 정황 증거들을 수집해 놓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 검찰 내에서는 채 총장의 사퇴 표명 직전 "청와대가 의혹과 관련해 유력한 증거인 혈액형이 나왔다고 검찰을 압박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이는 조선일보가 기사에서 언급한 가족관계등록부나 출입국 내역, 학적부 등과 함께 청와대나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개입 없이는 나올 수 없는 정보라는 게 검찰의 생각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감찰을 통한 사퇴 압박과 동시에 단계별로 수위를 높여 '의혹이 사실 아니냐'는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채 총장이나 검찰이 쉽사리 움직일 수 없도록 한 전술"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황 장관을 내세운 것 역시 청와대의 전략적 판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자진 사퇴를 거부하던 채 총장에게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이라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를 쓰도록 지시해 황 장관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 아니냐는 것이다. 청와대 정보에 밝은 한 검찰 출신 관계자는 "황 장관이 이미 사의를 표명했지만 청와대가 '화살받이'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며 이를 만류하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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