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더 하시려고요? 그 정도 하셨으면 충분한 것 같은데…"
문재우 손해보험협회 회장이 지난달 금융당국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말이다. 연임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확인한 문 회장은 지난달 26일 퇴임했다. 협회 회장 자리는 현재까지 공석이다.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꼼수를 부리고 있다고 항변한다. 낙하산 내정자를 정해놓고 정부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올 초만 해도 문 전 회장의 연임은 거의 확실시됐다. 한 보험사의 고위관계자는 "내부 평가도 좋았고, 재임기간 가시적인 성과도 나와 다들(회원사들) 연임을 지지했다"고 했다.
사실 문 전 회장 역시 낙하산 인사다. 재경부와 금융감독원 등을 거친 관료(행정고시 19회) 출신으로 2010년 협회장으로 선출됐다. 자동차보험 사전견적제도 도입, 다중이용업소의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추진 등 보험사들의 숙원사업을 무리 없이 척척 해결하자 보험사들의 신망을 얻었다.
업계는 관료 출신 인사가 협회 회장으로 와야 당국에 줄대기가 편하고, 업계에 유리한 제도나 법을 추진할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민간 출신보다 관료를 더 선호하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낙하산으로 기존 낙하산을 몰아내는 행태다. 내부 평가가 박한 것도 아니고, 다른 문제가 불거진 것도 아닌데, 해당 협회의 의견은 무시한 채 회장을 바꾸려는 건 좀 과했다.
절차상으로도 성급해 보인다. 기존엔 임기 만료 한달 전부터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차기 회장을 선출해 공백기간을 없앴는데, 이번엔 회장 자리가 빈 지 3주 넘도록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얘기가 없다.
이러니 업계에선 "당국에서 챙겨줘야 할 인사가 생기니까 문 회장을 내친 것", "어차피 보낼 인사의 인선을 늦추는 건 눈 가리고 아웅" 등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미 신임 협회장으로 내정된 인사의 이름마저 돌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저기 물 먹다가 협회 회장자리라도 주려고 한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금융당국은 "멀쩡하게 일 잘하던 사람을 내쫓았다"는 비난을 듣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능력 검증 등 협회 회장 인선 절차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 같은 낙하산이라도 "구관이 명관"이란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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