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중국 남서부 광시(廣西) 장(壯)족 자치구 난닝(南寧)시의 리위안산장에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의 정상들이 한 사람과 만나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지켜봤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이날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통싱 탐마봉 라오스 총리, 잉락 친나왓 태국 총리, 응웬 떤 중 베트남 총리, 장즈셴(張志賢) 싱가포르 부총리와 연거푸 회담을 가졌다. 같은 자리에 앉아 6시간 가까이 아세안 정상을 바꿔가며 만난 것이다. 회의실의 오성홍기는 그대로였지만 상대국 국기는 계속 교체됐다.
옆방에선 아세안 10개국 교통장관들이 우두커니 서서 리 총리가 회담을 끝내고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리 총리가 들어오자 10개국 장관은 이름도 없이 국가명으로만 소개됐다. 이렇게 1초씩 악수를 나눈 뒤 리 총리는 사진만 찍고 곧바로 떠났다.
아세안 정상들이 황제 알현하듯 리 총리를 만난 것은 중국의 위상과 경제력 때문일 것이다. 중국도 동남아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싶다. 중국은 10년째 난닝에서 중국-아세안 박람회(엑스포)를 열고 있다. 해상 비단길의 기점이었던 이곳을 21세기 신해상실크로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것이 중국의 전략이다. 인구가 14억명에 가까운 중국과 6억명이 넘는 아세안을 바닷길로 묶겠다는 구상이다.
중국의 야심은 동남아에 그치지 않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7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인구 30억여명을 하나로 묶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제창했다. 일단 교통망을 연결한 뒤 이를 무역과 금융으로 확대, 거대한 경제협력체를 만들자는 계획이다.
20억명 해상 실크로드 경제권의 출발점이 난닝이라면 30억명 육상 실크로드의 최전선은 중국 서부 닝샤(寧夏) 회(回)족 자치구 인촨(銀川)이다. 동남아와 가깝고 기후와 인종이 비슷한 난닝을 동남아 공략 기지로 삼은 것처럼 이슬람교도가 많은 인촨을 실크로드 경제벨트의 창구로 활용하겠다는 심산이다. 14~17일 이곳에서 중국-아라비아국가 박람회가 열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중국은 남쪽으론 해상 실크로드, 서쪽으론 육상 실크로드를 내세워 경제 영토 확장에 매진하고 있다. 시 주석이 취임 후 첫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찾았을 정도로 북쪽에도 공을 쏟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동쪽 밖에 없다. 남서북쪽에서 하고 있는 행동으로 볼 때 중국은 동쪽으로도 확장, 시 주석의 국정 철학인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노래하고 싶어할 것이 분명하다. 소수민족을 내세워 동남아와 이슬람을 포섭하듯 우리 동포인 중국의 조선족을 내세워 중국-한반도 경제권 그림을 내놓을 수 있다. 남한의 수출에서 중국의 비중이 30%나 되고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가 80%인 상황에서 이를 거부할 형편은 못 된다. 한반도 경제는 이미 중국의 손 안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동진(東進)은 만만치가 않다. 최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고조되는 것은 이젠 동쪽에서도 대장 노릇을 해야겠다는 중국과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본의 뒤를 미국이 받쳐 주고 있다.
이런 구도 사이에 우리가 있다. 역사에서 보면 대륙과 해양 세력이 마찰을 빚을 때, 중국과 일본이 서로 으르렁거릴 때 한반도는 전쟁터로 전락하기 일쑤였다. 특히 경제는 중국, 안보는 미국과 손잡은 괴리는 언제가 터질 수 밖에 없는 모순을 안고 있는 형국이다.
100여년 전 우울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민족의 지혜와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 큰 판은 바뀌고 있는데 남북으로 갈라진 채 옛 사고에 머물러선 재앙을 피하기 힘들다. 서울과 평양의 보름달은 다를 수가 없다. 남북 지도자가 한반도와 한민족이란 큰 가족을 생각하는 한가위가 되길 기대한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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