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심장 평양에서 스포츠 이벤트론 사상 첫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게양되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한국 역도의 김우식(19ㆍ수원시청)과 이영균(19ㆍ고양시청)은 지난 14일 평양 류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열린 2013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 남자 주니어 85㎏급에서 각각 금메달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선수는 다른 출전 선수 없이 치러진 경기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당초 한국은 이영균이 85㎏급에, 김우식이 77㎏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열린 감독자 회의 결과 김우식이 한 체급을 올려 출전하기로 결정했다. 국제 역도 대회 관례상 출전 선수가 1명이면 시상식이 열리지 않는다. 출전 선수가 최소 2명이 돼야 국기가 오르고 국가가 연주된다. 대한역도연맹은 관계자는 "메달을 딸 확률이 높은 쪽으로 체급을 바꾸는 경우가 국제대회에서는 종종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한국 선수들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하면서 이어 열린 시상식에서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현지에서 태극기가 나부꼈다. 북한 관중이 기립해서 지켜보는 가운데 애국가도 연주됐다. 이 같은 장면은 조선중앙 TV가 15일 오전 11시께부터 녹화 중계하면서 전파를 타기도 했다.
북한은 그 동안 태극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사회주의 혁명의 대상으로 간주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앞서 한국 선수단이 북한에서 열린 스포츠 행사에 참가했을 때도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기만 허용됐다.
북한은 지난 2008년 홈 경기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태극기 게양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남북 축구대표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을 치르고 있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에 따라 홈과 원정을 오가며 한 차례씩 맞대결을 했다. 그러나 북한은 경기 전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완강히 거부했고, FIFA는 결국 북한의 홈 경기를 제 3국인 중국 상하이에서 치르도록 했다.
이날 태극기 게양으로 양국은 체육 교류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로이터통신는 "남북한이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면서 한국이 참가하게 됐고, 두 명의 주니어 선수가 역사를 펼쳤다"고 보도했다. AP통신도 "긴장 관계의 남북한이 이번 일을 통해 보기 드문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국제역도연맹(IWF) 역시 5년 만에 방북한 한국 역도의 소식을 비중 있게 전하고 있다. IWF는 지난 12일 "한국이 2008년 10월(남북 유소년 친선경기) 이후 5년 여 만에 북한 땅을 밟았다"며 "22명의 선수를 비롯해 임원 14명, 역도연맹 관계자 5명 총 41명이 중국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상세히 보도했다. IWF는 또 "북한이 신변 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국기 게양과 국가 연주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did not object)'"고 전했다.
한편 한국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주니어 선수 4명이 모두 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얻었다. 권예빈(19·수원시청)은 지난 13일 주니어 여자 69㎏급에서 동메달을 거머쥐었다. 이번 대회 시상식에서 가장 먼저 태극기를 올린 주인공이다. 하루 뒤인 14일에는 김우식, 이영균과 함께 주니어 남자 94㎏에 출전한 이재광(19ㆍ고양시청)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역도연맹은 이번 대회에 성인 18명, 주니어 4명으로 선수단을 꾸렸다. 이번 대회에는 역도 강국인 개최국 북한을 비롯해 중국,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의 강호들이 대거 출전했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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