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명이 수능을 봤는데 한 명의 답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채점한 사람이 기왕에 여러 지적이 나오니 고쳐서 답안지 다시 받자는 것이 지금 교학사 교과서 수정 보완의 논리다. 검정 취소라면 모를까, 지금 방식은 정부 예산을 들여 교학사 교과서를 더 낫게 만들자는 '불공정행위'다."
박찬승(56)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최근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교 교과서를 읽어본 첫 소감이 "'미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며 13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초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새로 생겼을 때 교과서 검정위원을 해봤고, 국사가 '검인정'이 아니라 '국정' 체제였던 2000년대 중반 국사편찬위원회의 국정 교과서 집필자로도 참여했다. 현재 쓰고 있는 검인정 교과서 한 종의 필진이기도 하다. 근현대사 중심으로 검정을 통과한 여러 고교 교과서들과 교학사 교과서를 비교해 살펴본 그를 이날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교학사 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을 읽어보고 어떻게 느꼈나.
"첫 인상은 '미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회영 등 6형제가 만주에서 신민회를 조직한 것처럼 썼다거나, 포츠담선언 날짜가 잘못됐다든지, 애치슨 선언과 미군 철수 시기가 뒤바뀌어 있다. 교과서 검정에서는 사실 오류를 제일 먼저 본다. 검정을 거친 교과서인데도 '팩트'에 오류가 많다는 데 놀랐다. 문장이 잘 안 읽힌다. 고등학생 수준에 맞게 써야 하는데 너무 전문적이거나 고유명사 단체 이름 같은 게 한 페이지에 너무 많아 굉장한 학습 부담을 준다. 교과서는 집필에 10개월, 검토에 10개월 걸린다. 필자들이 다 모여 한 줄 한 줄 놓고 이야기를 한다. 나도 교과서 필진으로 참여했을 때 1년 가까이 매주 주말을 반납했다. 교학사 교과서는 그런 시간 투자를 안 하고 급히 쓴 것처럼 보인다."
-교학사 교과서는 사실 오류뿐 아니라 식민사관, 친일 미화, 이승만 띄우기 등 여러 지적이 나왔다. 무엇이 가장 문제인가.
"사실 오류와 의도적인 왜곡처럼 보이는 부분이다. 다른 여러 교과서에도 5ㆍ16혁명공약을 실었는데 이 교과서만 '민정 이양'을 천명한 6항이 빠져 있다. 적절하지 않은 지문이나 질문도 많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대목에서도 '민비'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건 가담 일본인의 글을 소개하면서 왜 일본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을까 생각해보라는 질문을 던진다. 시해범의 입장을 이해하라고 받아들이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에서 국내 문화운동, 실력양성운동 비판하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런 주장이 타당할까 하고 묻는다.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듯 하다. 또 구한말 조선의 유생들은 학문 수양에만 힘쓰고 망국의 책임을 반성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병을 일으킨 유생이 숱하고 자결한 사람은 내가 확인한 것만 70명이 넘는다. 선조들이 무책임했던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은 자기 비하다. 대한민국 역사에 자긍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썼다면서 이런 자기 폄하적인 부분이 있다."
-교학사 교과서 필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이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비판에 대해 "우리 민족의 내적 발전을 강조하려고 했다"고 반박한다. 그렇게 보이나.
"일제의 수탈을 언급하고 물산장려운동을 강조하는 등 식민지 근대화론처럼 비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비판 받을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다. 예를 들면 시간 관념의 변화는 근대의 당연한 현상인데 일제 지배 이후라는 표현을 붙여 일제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 건 일제 지배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교육과 언론 계몽 같은 것의 역할이 큰 것이다. 일본인 농장주가 수리조합을 만들고 저수지를 잘 축조해 선진적인 농장 운영을 했다는 대목에서도 그들이 간척사업을 위한 공유수면 매립 허가를 특혜로 받았다거나 수리조합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 투쟁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냥 일본 사람 대단하다고 느끼게만 써놨다. 그렇게 균형 잡히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이 교수는 이승만을 강조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승만에 대한 일반의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기 위한 거라고 설명한다.
"교과서 저자가 자기의 생각을 주입하겠다는 자세는 잘못이다. 교과서는 기본적으로 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정리해 학생에게 전달한다는 관점에서 써야 한다. 저자가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쓰면 편향될 수밖에 없다. 안창호는 초기 임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도 임정 부분에서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이승만은 도처에서 언급되고, 사진도 가장 많이 나온다."
-교과부가 검정 취소가 아니라 수정 보완 계획을 제시했다. 수정 보완으로 괜찮은가.
"충분한 수정 보완 자체가 어렵다고 본다. 일단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내용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팩트'의 수정조차도 굉장히 시간이 걸린다. 括岵暉?인용문을 덜어내고 편집도 새로 해야 한다. 필자 본인들이 모르는 오류도 굉장히 많을 수 있다. 한 달 안에 고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게다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를 학교 선택에 맡기지 않고 국편에서 다시 고쳐 내라고 하면 고칠 게 적은 다른 교과서쪽에서 보면 '불공정행위' 아닌가. 문제가 있는 교과서를 예산을 들여 좋은 교과서로 만들어주겠다는 꼴이다. 아예 검정을 취소하거나 출판사가 인쇄를 포기하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학교에서 책의 품질을 보고 선택하도록 하는 게 맞다. 물론 검정 이후에도 수정은 가능하다. 그건 일반적으로 필자들이 알아서 하는 거다."
-검정 과정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보나.
"검정위원 숫자가 너무 적다. 한 단원 당 최소 1명의 교수 검정위원을 두어야 하는데 이번 검정의 교수 3명은 필요한 최소 수준의 절반밖에 안 된다. 검정위원을 각계 추천 받자는 의견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언뜻 합리적인 것 같아도 검정이 비공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도 있다. 국편이 역사교과서 검정을 굳이 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국편은 연구기관으로 남아야지 교과서 심의를 하면서 논란에 휘말리면 국편 자체가 신뢰를 잃게 되는 문제도 있다. 역사교과서 검정을 교육과정평가원으로 돌려 보내고 국편은 자문 정도 하는 것이 좋겠다."
-역사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영역이다. 그런 다양성을 존중한다면 교학사 교과서 같은 시각의 책이 하나쯤 있어도 무방한 거 아닌가.
"한 학교에서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서 공부한다면 그래도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교과서는 학교마다 한 종을 채택하고 그것으로만 공부를 한다. 학생들은 거기 씌어진 내용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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