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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명절 맞은 홍성 오일장 가보니… "대목은 무슨" 헛헛한 웃음 뒤에도 인정은 차고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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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명절 맞은 홍성 오일장 가보니… "대목은 무슨" 헛헛한 웃음 뒤에도 인정은 차고 넘쳤다

입력
2013.09.1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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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 앞둔 홍성 오일장에 구경 갔다. 이건 뭔 국민의례 식순도 아니고, 가는 집마다 첫 마디가 "장사 안 돼 죽겠는데…"다. 그래도 명절. 수백 년 전부터 그랬듯이, 장터 거리는 술렁이고, 사람들 얼굴엔 쑥부쟁이 꽃잎 같은 웃음이 번진다. 바쁘게, 모질게, 그리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일단 하나 잡숴. 몇 년? 몰러, 오래 됐제. 막내 태어나던 해니까… 사십칠 년인가, 팔 년인가. 장사한 지 벌써 그렇게 됐나부네. 아고, 돈은 뭔 돈. 겨우 우리 내외 입에 풀칠하고 사는 거지. 그래도 육남매를 이걸로 다 키웠어. 갸들이 이제 그만 하라고 성화네. 근데 이거 안 하고 놀면 뭐 한대. 장날이라고 여기 나와야 그래도 동무도 있고, 구경 온 사람도 있고 그렇지. 그냥 평생 하던 거니까 여적 하고 사는 거여. 호떡값? 두 개 천원. 만두는 네 개 천원. 사실 만두는 밑지고 파는 거여. 채소값이 얼매나 올랐는지… 우리 생각하면 세 개 천원은 받아야 하는디, 시장 생각해서 네 개 천원 받는 거여. 싼 맛에 이거라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서 딴 사람들로 뭐든 팔아먹고 사는 거 같으니께. 대목 경기? 잘 모르겄네, 난 호떡 장사니께. 저기 동서수산 김씨한테 물어봐. 저 영감도 한 사십 년 됐응께.-호떡전 황예슬(80)

전엔 이 장에서 장화 안 신고는 못 다녔어. 여기가 본래 물것이 많았거든. 광천도 가깝고 대천, 안면도에서도 오고 그랬으니까. 어물전 경기 좋았지. 그땐 바다도 지금과 달랐응께. 말도 못햐.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칠, 팔십 마리 든 병어 한 짝에 겨우 오천 원이었어. 지금은 이십삼만 원은 줘야 혀. 그래 받아도 안 남아. 진짜 인건비도 안 나와, 인건비도. 저기 물건 나르는 자 있제? 맞아. 자도 동남아서 온 아야. 그래도 하루 육만오천 원은 줘야 혀. 생선이라도 좀 만지는 사람이면 십만 원은 기본이야. 그러니 뭐 장사가 되겄어? 요샌 조금 더 비싸도 다 마트로 가 버리는데. 내가 열아홉 살부터 여기서 장사 하는데 진짜 재작년 다르고,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네. 갈수록 안 돼. 이러다 여기 홍성장도 머잖아 문닫지 않을까 싶어. 글쎄… 개천변 채소 파는 데 한번 가봐. 그래도 거긴 좀 나아 보이니께.-어물전 김동복(68)

아이, 나아 봐야 뭐 얼마나 낫겟어요. 추석 대목이 이렇게 썰렁하기는 처음인 것 같네요. 매스컴에서 시장 물가가 비싸졌다고 난린데, 사실 물가는 작년이랑 비슷해요. 재래시장 찾는 사람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거지. 그래도 딴 것보단 아직 채소는 장에 와서 사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 배추요? 서울 가락동 가서 떼 온 거에요. 아, 유통망이 다 그쪽으로 집중돼 있으니 별 수 있나. 거기가 제일 싼데… 시골 오일장 사정, 도시 사람들이 알면 놀랄 일이 많아요. 쉬는 날? 전엔 그래도 하루 걸러 네 군데씩 다녔는데, 이젠 당진, 청양, 대천, 광천, 홍성에 서는 오일장을 매일 다녀요. 그래야 기름값이라도 건지지. 이러다 진짜 다시 양계장이나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아이엠에프 전까지 2만수(마리)짜리 양계장 했거든요. 근데 사료값이 너무 올라서… 에이, 이런 얘기 듣지 말고 술집에 가 보세요. 옛날 어른들이 그래도 재밌는 얘기가 많지.-채소전 장준섭(52)

"낮부터 술 먹고 들어가면 할망구가 싫어하지 않냐고? 흐흐흐. 이게 보신란이거든, 보신란. 이걸 몇 알 먹고 들어가면…" 아따, 그만 해유! 이 아저씨가 또 대낮부터 술주정이네. 서울선 이걸 곤계란(부화가 반쯤 된 유정란)이라고 그런다면서유? 여기선 보신란이라 그래유. 글쎄 몇 년이더라… 시어머니가 하시던 거니께 삼십육 년 됐네유. 십 년 전에 시장에 큰 불 났을 때 가게를 닫았는데, 이 아저씨 같은 양반들이 하도 성화를 부려서 다시 열었지유. 여기가 홍성 영감님들 사이에선 '싸롱'이었거든. 뭐 살 건 없어도, 여기서 탁주 한 잔 하러 영감님들이 시장에 나왔지유. 하두 불편해서 좀 고치구 사려는데, 다들 그냥 놨두라구 성화를 해 싸서 여태 아궁이 불을 때고 있구만유. 그래도 오일마다 찾아오는 저런 영감님들이 있어서 홍성장이 아직 옛 분위기가 남아 있을 거여. 예산장, 광천장 다 쪼그라들었는데… 아, 그러구만 있지 말고 하나 먹어 보라니까. 진짜 맛있어유. 젊은 양반이 왜 이렇게 겁이 많댜!-보신란전 김금자(60)

홍성=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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