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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쌍용차 노동자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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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쌍용차 노동자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

입력
2013.09.1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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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세 자녀를 둔 징계해고자. 수입원 없음.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쌍용차 정리해고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가르는 용어인 '죽었다''살았다'를 사용, 아빠를 계속 찾음.' 2년 전 취재수첩에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박동수(가명)씨와 아이들에 대해 그렇게 적혀 있었다. 지난 달 26일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박 씨는 막내 민수(가명·10)를 데리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사이 그의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작년 어린이날을 앞두고 마트에 갔는데 민수가 장난감을 사 달라고 바닥에 주저앉아 떼를 썼어요.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성질이 나서 손이 올라갔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 조그만 아이를 제가 때리고 있더군요. 참담했습니다. 장난감 하나 못 사주는 가장이 돼 버린 심정…, 말로 다 못합니다." 쌍용차에서 해고된 뒤 풀 데 없는 울화에 휘발유를 차에 싣고 다닐 만큼 심리적으로 위태로웠다고 고백했던 박 씨다. 2011년 10월, 쌍용차 가족들의 심리치유공간 와락이 경기 평택에 문을 연 뒤 그는 아내와 함께 8주에 걸쳐 집단상담을 받았다. 당연히 민수도 와락에서 상담을 받았다. 민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고, 그 뒤로 1년 넘게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 뒤에 또 오토바이를 훔쳤어요" 징계해고자 남인성(가명)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2년 전 남씨의 가장 큰 걱정은 둘째 아들 기윤(가명·15)이 문제였다. 파업 전엔 학교에서 리더십이 있다는 평을 듣던 기윤이는 파업 후 급격히 비뚤어지더니 동급생 목에 문구용 칼을 들이댈 정도로 거칠어졌다. 그러다 작년에 오토바이 절도를 저질렀고, 학교 화장실에서 동급생을 때려 6개월 보호감찰 처분까지 받았다는 거였다. "그러다 작년에 서강대에서 진행한 힐링캠프에 다녀온 뒤론 조금씩 달라지는 듯했어요. 거기 가서도 처음엔 캠프 유니폼에다 'F**k you'라고 욕설을 쓰는 등 비뚜름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캠프 연구원들이 긴급회의까지 했대요. 그래도 거기가 녀석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 뒤로 자발적으로 2번이나 더 캠프에 참여하는 등 조금씩 나아졌거든요. 그랬는데…."

남 씨는 12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쌍용차 꼬리표 때문에 매번 재취업에 실패했고, 지난 4월 고향 친구소개로 전남 목포에서 덤프트럭 운전 일을 얻어 내려갔다. 남 씨는 "기윤이가 저랑 떨어져 지내게 되면서 다시 외박도 하고 싸움박질도 하는 등 예전 버릇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아요. 자주 가보지도 못하고…."

2,646명 해고- 77일간의 옥쇄파업- 경찰특공대의 폭력 진압….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과 자살로 무려 24명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사태는 아직 진행 중이다. 아니 속으로도 곪아가고 있다. 2년 만에 다시 만난 쌍용차 노동자들은 노동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나 기득권에 반감이 큰 중학생 아이가 뉴스를 보면서 이러더군요. '아빠, 옳고 그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힘 있는 쪽에 서야 돼'라고요.

-퇴직금 압류당하고, 새벽에 나가서 힘든 일 하고, 아내랑 돈 때문에 다투고, 아이들 학원 끊은 지도 오래입니다. 밝던 아이들이 내성적으로 변했고, 친구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잘 나서지 않는 등 이기적으로 변했어요.

-학교에서 아버지 직장 해고사유서를 떼오면 급식을 무료로 해준다고 했대요. 해고 사유가 폭력행위, 선동행위, 회사 기물 파손 등 15가지나 됐습니다. 도저히 애들에게 사유서를 떼줄 수 없었어요.

복직 투쟁과 노사 협상을 이어오던 지난 3월, 무급 휴직자 전원과 징계해고자 중 승소자 12명, 정직자 23명, 총 489명이 복직했다. 현재 복직 투쟁은 징계해고자와 정리해고자들이 중심이 돼 이끌고 있고, 그 주력이 대한문 앞 쌍용차 분향소를 지키는 30명의 '선도투'다. 가장 단단한 투사처럼 보이는 그들조차 겪어온 고초만큼 상처도 깊다. 선도투 사람들은 지난 3월부터 와락의 상담사들에게 격주로 개인 상담을 받고 있다. 하효열 와락 치유단장은 "우리의 상담은 좀 잔인하게 말하면 선도투 사람들이 더 잘 버티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갈등의 현장에 있던 사람 마음속에는 갈등이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를 조금 가볍게 만들기 위해 상담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가장 중에는 이혼자가 많고 또 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희망퇴직자 차문기(가명·45)씨도 2011년 이혼했다. 대학생, 고등학생인 두 남매는 전 부인이 키우고 있다. 파업 이후 주동자 색출을 위한 경찰조사까지 이어지면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수입이 없는 나날이 계속됐지만 차 씨는 구속된 동료들 면회를 가고 집회를 다니는 등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이혼 후 경기 화성의 기아자동차 완성라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차 씨의 급여는 3년째 일당 8만원. 파업 전 14년차 쌍용차 직원이던 시절의 절반 수준이다. 그래도 용케 버티던 차 씨에게 惻?3월 무급휴직자 복직 이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리가 싸워온 덕에 복직된 이들인데 이후론 친한 동생과 동료들조차 집회에 잘 안 나오고 연락도 안 해요. 배신감이 느껴졌어요" TV 뉴스나 드라마에서 조금만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이 계속 나고, 자살 충동까지 들자 차 씨는 다시 와락을 찾아왔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복직자들도 마음 편히 온전한 일상을 되찾지는 못한 듯했다. 복직자 김성남(가명)씨는 회사 마크가 달린 작업복은 가방에 넣고 사복 차림으로 출근한다. 아파트 이웃 중에 쌍용차 가족이 많고, 그들 중 상당수가 아직 복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 박미영(가명)씨는 "회사에 못 나가고 있을 때 다른 집 아저씨가 쌍용차 점퍼를 입고 출근하는 걸 보니 분노가 치솟더라. 동료를 내쫓고 그렇게 당당할까 싶었다"고 말했다.

"내 사촌동생들부터 처가 쪽 사촌동생들까지 전부 몰살이야." 대한문 앞에서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정리해고자 김수경(51)씨. 자신과 친척 5명이 모두 쌍용차를 다니다 전원이 정리해고 되거나 희망퇴직자가 됐다. 이후 김 씨는 농장 일에 공공근로, 상조회사 등 몇 개월에 한번씩 직장을 바꿔가며 힘겹게 버텨왔고, 다른 친척들도 공사판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그는 "모두 평택시에 살고 있지만 해고 이후에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망가진 일상을 복구하기 위해 무단히 애쓰다 지쳐 고국을 등지는 이도 생기고 있다. 오랫동안 사측과의 싸움에 앞장서오던 정리해고자 이원식(가명)씨는 지난 달 30일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2년 전 설문조사에서 초등학생인 큰 딸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이사를 했다고 답할 정도로 아이들 문제에 신경을 썼던 이 씨였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쌍용차 파업에 참여했던 사실이 밝혀지면 곤란하다"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다.

추석 연휴를 한 주 앞둔 지난 10일, 대한문 앞 쌍용차 정리해고자 7명은 해고자 복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김수경씨도 그 중에 있었다. 때마침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가만히 응시하던 그는 스스로 다짐하듯 말했다."이번 추석은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지 않겠어요?"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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