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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끝 모를 트라우마를 보듬고… 희망 되찾아 준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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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끝 모를 트라우마를 보듬고… 희망 되찾아 준 울타리

입력
2013.09.1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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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치료방'문을 열자 상담사 하승연(41)씨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지우(가명ㆍ7)가 하 씨에게 지시를 내렸다. "눈도 꼭 감고요."지우의 손가락 총을 맞은 하 씨는 그 자세 그대로 치료시간 45분 내내 누워있어야 했다. 지난 9월 5일 오후 1시, 심리치유공간 '와락'에서 진행된 지우의 23번째 놀이치료 시간이었다.

6달 전 와락에 왔을 때 지우는 참 어려운 아이였다. 웬만한 말은 대부분 욕설이었고, 마음에 안 들면 비명을 질러대기 일쑤였다. 낯가림도 심하고 감정 표현에도 서툴러 병원 놀이처럼 상상력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놀이치료 자체가 힘들었다. 지우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과 반감이 엄청났다. "내가 아빠를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폭군이었다. 아니 '그날 이후' 폭군이 돼버렸다. 평소에도 자상한 편은 아니었지만 4년 전 해고된 뒤부터 심리적 압박감과 경제적 어려움을 주체하지 못했고, 그 유탄이 지우에게도 쏟아진 거였다. 하 씨는 지우가 치료시간에 온전히 안심하게 하는 데 마음을 쏟았다.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터여서 그 닫힌 마음을 열자니 아이가 가장 원하는 걸 해줄 도리밖에 없었던 것. 총 싸움을 하면서 이 날처럼 꼼짝 못하고 누워있은 것만도 여러 날이었다고 하 씨는 말했다. 변화는 22번째 만남에서야 시작됐다. "지우가 한참 놀더니 '나는 (놀이치료를 오는) 금요일만 말고 매일 이래야 돼'라고 하더라고요. 아이에겐 여기서의 시간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거죠."

서울역에서 '쌍용차 범국민 대회'가 열렸던 지난 달 24일, 어른들이 떠난 뒤 아이들 10여명이 와락에 모였다. 창으로 쏟아져 든 환한 햇살아래 5살부터 8살까지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제 세상 만난 듯 소리치며 뛰고 굴렀다.

"아이들이 정말 많이 변했어요, 보세요." 2년 전부터 자원봉사를 해 온 엄태기(36)씨는 자랑하듯 그렇게 말했다. 처음엔 다들 부모와 떨어지려고 하질 않아 어른들 집단상담을 진행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엄 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다시 2년이 흘렀고, 아이들은 더디게, 힘겹게 '정신적 피폭상태'를 극복해왔다.

2년 전 만났던 쌍용차 아이들은 아버지들을 폭행한 경찰을 두려워했고, 전경버스만 봐도 숨곤 했다. 하지만 이제, 시내버스조차 타길 거부하던 주강(8)이도 씩씩하게 혼자 버스를 탄다. 파업 기간 동안 엄마를 잃고 한사코 아빠와 붙어 지내려던 지훈(가명·8)이도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와락을 뛰어 다닌다.

물론 여전히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일터에서 내쫓긴 뒤 부당하게 많은 것을 빼앗긴 아이들. 부모의 힘겨운 재취업과 맞벌이, 잦은 부부싸움과 폭력, 가출, 이혼…. 속절없이 망가져버린 울타리 안에서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방치된 시간이 길고 상처가 깊은 아이들. 아직도 말을 배우려 들지 않는 주희(가명·3), 아직 아빠를 용서하지 못하는 지우, 언어장애에다 애착장애를 앓고 있는 기훈(가명·7)이…. 아이들의 울타리를 허물어뜨린 자본과 국가는 그들에게 어떤 새 울타리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그들에게 와락이 있었다. 2011년 10월 개소 이후 와락은 '이름만 들어도 아이 얼굴에 화색을 돌게 하는'공간이 됐고, 그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안간힘으로 다시 희망을 찾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와락도 달라졌다. 외형적으론 초기의 북적거림이 많이 줄어든 모습이다. 3차 상담을 마지막으로 쌍용차 집단 상담은 끝났다. 기약 없는 쌍용차 복직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 와락과 멀어진 가족들도 있다. 상근자 이정아씨는 "사실상 복지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와락의 지원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제 '쌍용'이라면 지긋지긋하다며 지원받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무급휴직자가 복직하면서 지금 와락은 정리해고자 가족, 그 중에서도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를 지키는 선도투 30명과 그 가족을 지원하는데 역량을 쏟고 있다.

그 대신 와락의 외연은 더욱 넓어졌다. 와락에서 집단상담을 함께 했던 상담사 5명은 와락 치유단을 결성했다. 이들은 대한문 앞 선도투들의 개인상담과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와 유성기업 노조 등 전국의 노사분규 사업장을 돌며 집단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이제 와락은 노사갈등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심리적 보루 역할을 요청 받을 만큼 존재감이 커졌다.

하지만 초법적 부당해고와 차별이라는 근원적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쌍용차 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온전히 치유될 수는 없는 일이다. 조금 나아졌다가도 억장 무너지는 현실 속으로 복귀하면 금세 악화하기 일쑤. 그 모든 증상들을 와락이 돌볼 수도 없다. 평택에서 처음으로 쌍용차 가족의 상담을 시작한 정혜신 박사는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야 국가 폭력 피해자 치유센터인 '광주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가 처음 문을 열었어요. 국가 조직 중 하나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영역을 담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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