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스물 네 살의 스위스 청년인 지노 디플로리언은 벌써 8시간째 헤엄치는 중이다. 태양은 빛나고, 공기는 신선했고 바다는 평온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지쳐 있다.
그는 가장 자신 있는 자유형으로 분당 54번의 스트로크를 휘저으면서도 계속 시간을 체크한다.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토해내기 위해 머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가 가야 할 목적지인 프랑스 해안의 일명 '하얀 절벽'인 그리네 곶이 막연하게나마 저 멀리 시야에 잡힌다. 그가 이 도전에 성공하면 해협을 헤엄쳐 횡단한 최초의 스위스인이 된다. 다시 힘차게 물살을 가른다.
옆에는 어선을 탄 그의 동료와 감독관 등이 열띤 응원을 보낸다. 하지만 지노는 보트나 사람을 만져선 안 된다. 곧 바로 실격처리 돼 물 밖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감독관은 그가 수영한 거리와 시간, 속도 등을 체크하고 있다. 지노의 수영코치인 제라드 몰랜드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지노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스톱워치를 살피던 그 때, 몰랜드가 갑자기 배를 향해 소리친다. "선장, 빨리 음식을 줘!" 지노는 물 속에 뜬 채로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지노처럼 대부분의 도전자들 역시 이렇게 평균 40분마다 빵과 물, 초콜릿 등으로 지친 체력을 보충한다.
무엇보다 도전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살을 에는 듯한 차디찬 수온. 8월 하순이지만 16.8도에 불과하다. 장시간 추운 물 속에 있다 보니, 지노의 입술은 창백하게 변한 지 오래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도버해협을 횡단한다는 건 그 만큼 극한의 도전이기 때문에 일각에선 도전자들의 생명이 단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노야, 괜찮니?" 몰랜드의 질문에 한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는 "너무 춥고 근육이 아프다"며 겨우 입을 뗀다. "그래, 천천히 다시 시작해 보자." 몰랜드의 응원에 지노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수영을 이어간다. 하지만 아쉽게도 12시간에 걸친 지노의 도전은 목적지를 불과 5㎞를 앞두고 결국 중도 포기로 막을 내렸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영국 도버에서 프랑스 칼레를 잇는 도버해협 횡단(최단거리 33㎞)은 이렇듯 그 자체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한의 도전이다. 장시간 차가운 물에 노출돼 나타나는 저체온증과 체력적인 한계, 배변문제 등 생리현상까지 온갖 악조건들 때문에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한다. 이 해협은 또 매일 500척 이상의 선박들이 오가는, 세계에서 가장 붐비고 위험한 항로 가운데 하나다.
이 때문에 도버해협 횡단은 등산으로 따지면 아무나 올라 깃발을 꽂을 수 없는 에베레스트 등정과 맞먹는 도전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20여 년 전부터 시작돼 지난해까지 도버해협 횡단에 성공한 이는 총 1,341명. 올해 6~9월에도 약 300명이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성공률은 5명 중 1명 꼴에 그친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연출하려는 이색 도전자와 그들의 사연은 그래서 매년 여름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2011년 9월 일흔의 노인인 영국의 로저 올솝은 세계 최고령 횡단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당시 17시간51분 동안 거친 파도와 싸웠던 그는 "섬에 발을 내딛는 순간 천국에 온 것 같았다"고 감격해 했다. 안나 오포드 기네스협회 심사관은 "영불해협을 헤엄쳐 건너는 위대한 도전을 70세에 성공했다는 건 매우 놀라운 일이다"고 축하했다. '아시아의 물개'로 불렸던 고(故) 조오련도 1982년 도버해협 횡단에 성공한 바 있다.
장애를 극복해낸 감동 스토리들도 도버해협 도전사를 빛내고 있다. 2010년 9월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잃은 마흔 두 살의 프랑스 남성 필립 크루와종은 특수 의족을 달고 약 13시간30분의 기록으로 바다를 건넜다. 1994년 TV안테나를 수리하기 위해 사다리에 올랐다가 2만 볼트의 전기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던 그는 횡단 후 TV인터뷰에서 "내가 해냈다. 정말 미치도록 행복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이를 지켜본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2005년 8월엔 사지마비 장애인인 영국 여성 힐라리 리스타(당시 33세)가 요트를 타고 도버해협을 단독 횡단하기도 했다.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자신감을 잃은 다른 장애인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며 도전이유를 밝혔다.
감동과 환희만 있는 건 아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도전인 만큼, 안타깝게 물 속으로 스러져간 도전자들도 있었다. 올해 7월 영국 여성 회계사인 수잔 테일러(34)는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을 보살피는 자선단체와 아이를 잃은 가정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단체 등의 자선기금 마련을 위해 횡단에 나섰다가 그만 숨지고 말았다. 테일러처럼 목숨을 잃은 도전자는 지금까지 8명에 달한다.
"(횡단에 실패했지만) 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아직 배가 고프네요."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이며 무려 3만5,100번의 스트로크를 휘저었던 지노. 동료들에 이끌려 뭍으로 겨?올라선 그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해협횡단 재도전 의사를 밝히며 환하게 웃었다. "수영인들에게 도버해협 횡단은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것과 같은 도전이다. 해를 넘길 수록 더 많은 이들이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다"고 슈피겔은 전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