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무기로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 포기를 선언하고 유엔에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가입서를 제출했다. 미국의 군사개입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제시한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와 시리아 화학무기 폐기 방안을 놓고 이틀째 팽팽한 협상을 벌이는 한편, 시리아 인근 해상의 군함 배치 기간을 연장하며 시리아 정권을 압박했다.
시리아 “30일 뒤 정보 제공” 미국 “당장 내놔라”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은 12일 “시리아가 CWC 가입서를 제출했으며 반기문 유엔총장은 이를 환영했다”며 “서류 검토를 거쳐 30일 뒤 시리아에 회원국 자격이 부여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이날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러시아 TV방송에 출연해 “러시아의 제안에 따라 시리아 화학무기를 국제사회의 통제에 맡기겠다”며 “표준적 절차에 따라 한 달 뒤 화학무기 관련 정보를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이번 사안에 적용될 표준은 없다”며 즉각적인 정보 공개를 요구했다.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케리는 “화학무기 폐기는 적기에 완벽하고 검증가능하게 이뤄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땐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며 군사개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라브로프는 이에 맞서 “시리아 정부에 대한 어떤 공격도 불필요하다는 전제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미국에 군사적 위협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두 장관은 13일에도 회담을 이어갔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시리아 인근에 투입된 함정 두 척의 배치 기간을 2주 연장한다고 밝혔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장착하고 지중해에 배치된 구축함 4척 중 하나인 USS배리와 이달초 홍해에 배치된 항공모함 니미츠가 그 대상으로, 유사시 시리아에 즉각 미사일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무력시위로 풀이된다. 조지 리틀 국방부 대변인은 “이 지역에 대한 강력한 군사적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여러 달 미뤄온 반군 무기 지원에 나서는 등 시리아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이에 맞서 군함 추가 배치로 지중해 해군 전력을 강화하는 한편 시리아 우방국 이란에 방공미사일 공급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고개 드는 화학무기 폐기 무용론
러시아 중재안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시리아군이 화학무기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ㆍ중동 관리들을 인용, 알아사드 정권의 비밀부대인 450부대가 지난주부터 화학무기를 시리아 전역 50여 곳에 분산 저장하고 있다고 12일 보도했다. 관리들은 이를 미국ㆍ이스라엘의 추적이나 국제기구의 사찰을 피하려는 조치로 해석하면서 중재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리아 최대 반군조직 자유시리아군은 CNN방송에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를 레바논과 이라크로 옮기려고 한다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AP통신은 “시리아 정권에 대한 불신, 불확실한 저장소 위치, 치열한 내전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화학무기 폐기는 어려운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화학무기를 찾아내더라도 특수시설을 동원해 화학적 중화 및 소각을 하는 복잡한 폐기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마크 피츠패트릭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 팀장은 “모범사례인 이라크에서도 화학무기 폐기에 여러 해가 걸렸다”며 “미국 국방부는 시리아 화학무기 확보에 7만5,000명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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