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가을 아침 설탕 세 스푼에 홍차 한 잔은 계절적 정취를 만끽하게 할 뿐 아니라 활력을 높이는 달콤한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설탕이 비만과 당뇨를 부르는 건강 위협 요인이란 경고와 맞닥뜨리면 분위기는 확 달라진다. 프랑스에선 이미 비만과의 전쟁을 위해 설탕이 들어간 청량음료에 설탕세(稅)를 부과하고 있어 이제 설탕은 만인의 공적이 된 셈이다.
▲ 인도 산스크리트 '사르카라(sarkara)'에서 어원이 유래된 설탕(sugar)은 오래 전부터 국경무역에서 빠질 수 없는 세금부과 품목이었다. 10세기 무렵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은 잇따른 대륙정복을 통해 동서간 무역을 관장했고, 교차 물류망을 정비해 통행세를 소비세로 단순화시킨 세계 최초의 무역제국이었다. 당시 주요 교역품은 유럽의 유리제품과 동방의 면직물 실크 등이지만, 실제로 몽골 통치자들이 가장 신경을 써 징수한 세금 중 규모가 큰 것이 설탕과 소금, 석탄에 대한 것이었다.
▲ 1776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도 설탕과 차(茶)에 부과된 세금의 저항운동에서 시작됐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프랑스와의 오랜 전쟁으로 재정이 악화하자 식민지 미국에서의 세수확보를 위해 설탕법을 제정, 설탕에 대한 관세와 인지ㆍ수입세 등 과도한 세금을 요구했다. 결국 1773년 차에 대한 수입세 갈등이 '보스턴 차 사건'으로 번지며 미국 독립전쟁의 단초가 됐다. 신대륙 주민들에게 필수품이나 다름없던 설탕과 차에 부과되는 과중한 세금은 일상의 큰 고통이었다.
▲ 세월은 흘러 설탕이 비만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설탕 세 스푼은 빛 바랜 추억이 되고 있다. '뚱보 나라'로 미국과 1, 2위를 다투는 멕시코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청량음료 1ℓ당 1페소(87원)의 설탕세 징수를 발표했다. 코카콜라 등은 "비만의 원인은 모든 음식의 칼로리"라며 "설탕세로 비만을 해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학교와 식당에서 청량음료 퇴출을 선언한 뉴욕의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멕시코의 설탕세 징수에 지지의사를 보냈다. 청소년 비만에 대한 경각심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설탕세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릴 날이 머지않은 듯싶다.
장학만 논설위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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