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1시40분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감찰 지시 소식이 전해진 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8층 총장실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채동욱 검찰총장을 비롯해 대검 간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채 총장은 이 자리에서 사퇴 의사를 밝혔다. 참모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채 총장은 곧바로 사퇴의 변을 직접 작성해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법무부의 감찰 소식이 알려진 후 총장의 사퇴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시간 남짓이었다.
채 총장이 전격 사퇴를 결정한 것은 사상 초유로 감찰을 받는 검찰총장으로서는 검찰 지휘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검찰 조직의 안정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6일 조선일보가 '혼외 아들' 의혹을 제기한 이후 당장 일선 검사들이 동요해 업무에 지장이 있다는 분위기가 전해지면서 (총장의) 걱정이 컸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채 총장이 12일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유전자 검사도 받겠다고 밝히면서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채 총장은 최근 황 장관을 만나 사실무근임을 거듭 설명하며 미확인 보도로 총장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확고히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법무부가 총장의 손발을 묶는 사상 초유의 감찰 카드를 꺼내 들면서 채 총장은 충격을 받았고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채 총장은 취임 후 5개월간 각종 추문에 휩쓸리고 국민의 외면을 받아온 검찰의 신뢰를 회복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채 총장 취임 당시 검찰은 상당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었다. 지난해 말 김광준 검사의 뇌물 비리, 전모 검사의 성추문 등 잇달아 터진 비위 사건으로 '검찰이 자정 능력까지 상실했다'는 비판과 강도 높은 개혁 요구가 비등했다.
검찰총장의 대검 중수부장 감찰 지시가 '검란(檢亂)'으로 이어졌고, 결국 내부의 신뢰를 잃은 한상대 전 총장이 지난해 11월 낙마하며 100일 넘게 총장직이 비어 있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여당과 보수 진영에서 탐탁치 않게 여기던 채 총장 카드를 결국 꺼낸 것은 검찰 내에서의 높은 신망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채 총장은 취임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후보자 추천위원회를 통해 낙점을 받았지만,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현 정부가 임명하려던 총장은 따로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취임 직후 "나는 정권에 빚을 진 것이 없다"고 밝힌 채 총장은 무엇보다 '법과 원칙에 따른 수사'를 강조했다. 수사를 통해 검찰의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등을 기소했으며,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비리를 밝혀내는데도 성공했다. 특히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과정에서 황 장관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결국 수사로 극복했다.
지난 정권에서 누구도 하지 못했던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의 해묵은 미납 추징금 수 천억원을 받아낸 것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신명 나게 수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지난 수사가 결국 '윗선'과 코드가 맞지 않았다는 게 이번 총장의 낙마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자괴감이 크다"고 했다.
채 총장은 이날 오후 4시4분 대검 청사를 떠났다. 채 총장은 "그 동안 짧지만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국민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고 말했다. '법과 원칙'을 강조했던 총장이 떠난 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찰의 위기가 다시 시작됐다"고 밝혔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쓰러져 가는 검찰을 5개월 만에 이제 겨우 제자리로 돌려놓은 분"이라며 "검사들이 원하던 정치권,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원칙에 따른 수사를 했는데 이 것이 죄라면 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