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근 강변 펜션 '구름다리'에 영화 '투기꾼들'과 관련된 사람들이 모인다. '투기꾼들'은 1년 전 흥행작 '개떼'를 연출했던 양주일 감독의 신작인데 예정보다 촬영이 한참 늦춰진 상태다. 양 감독과 조감독 주기훈이 먼저 펜션에 도착하고 국내 영화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투자ㆍ제작ㆍ배급사 CK엔터테인먼트 투자팀의 구영서 부장과 모 화장품 재벌의 장녀와 연애 중인 주연배우 박성근, 그와 베드신 연기를 해야 하는 여배우 임정아 등이 합류한다. 가족을 캐나다 퀘벡에 둔 기러기 아빠로 구름다리 사장인 김시헌, 인근에서 펜션 '피엑스'를 운영하며 '투기꾼들'에 투자하고자 하는 퇴역 군인 한만수도 이들과 함께한다.
영화를 위해 만났지만 정작 이들은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돈내기 카드 놀이를 하며 잡담만 나눈다. 작가는 이들이 나누는 사소한 이야기 사이로 각 인물들의 과거사를 드러내면서 곳곳에 양 감독이 주변 인물들과 나눈 문답 형식의 인터뷰를 끼워 넣는다. 안개 속에서 헤어날 기미가 없는 영화 제작처럼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도 안개 속이다. 또렷한 서사도 없고, 중심이 되는 화자도 없으며, 일관된 시점도 없다. 종종 한 인물의 대사는 주체가 불분명한 또 다른 인물의 대사로 이어진다. 이를테면 대화가 골프하우스에서 우디 앨런으로, 닭백숙집에서 음주운전으로 중구난방 뻗어가는 식이다. 카메라가 다수의 등장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쉴새 없이 왁자지껄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 같기도 하고, 때론 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투기꾼들'은 소설 속 영화 제목이기도 하지만 등장인물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욕망을 위해 자신의 삶을 판돈으로 내건 사람들이다. 투자자와 제작자, 배우들이 영화라는 투기 상품을 놓고 속내를 감춘 채 서로 속고 속이는 부분은 꽤나 풍자적이다. 비논리와 불합리가 뒤엉킨 투기꾼들의 단합대회는 종종 아수라장 같은 현실의 단면처럼 보인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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