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젊은 소설가의 첫 소설집에서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아마 "무섭다"가 아닐까 싶다. 무엇이 무서운가. 세계가, 인간이, 가족이, 심지어 나 자신이 무섭다. 세계가 폭력으로 가득한 야만적인 곳이라는 인식은 이제 거의 보편적인 것이 되었지만, 그것을 실질의 감각으로 느끼고 전율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성취로서 그것을 도모하는 게 예술일 텐데, 이 신예작가는 그것을 여 보란 듯 해낸다.
최진영(32)의 를 홀린 듯 읽었다. 미문이나 서정으로 읽는 이를 물들이는 작가는 아니다. 세련된 구성이나 영리한 반전으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부류도 아니다. 그런데도 밤이 깊도록 책을 놓지 못하고, 휘몰아치는 10편의 이야기에 무력하게 말려들고 말았다. 집요하고도 정확한 문장으로 진실의 핵을 향해 거침없이 육박해가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책장마다 불길이 넘실거리듯, 에너지가 강렬한 작품들이다.
2006년 으로 등단해 주로 장편소설을 써온 이 작가는 비정규직, 실업청년, 청소년, 여성, 서민 등 이 시대 약자들의 현실에 깊이 천착한다. 아직 '기성'으로 편입되지 못한 젊은 세대의 "극심한 불안과 공포"가 이 작가를 사로잡은 핵심테마.
비정규직인 직장 내 왕따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창'은 주인공의 악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꿈 속에서 '나'는 초등학교 6학년 교실로 되돌아간다. 얼마 전 한 여자아이가 투신자살한 후 아이들 사이에는 죽은 아이가 원한을 품고 날마다 학생을 한 명씩 죽일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돈다. "두려움으로 미쳐버린 아이들은 아침마다 한 명을 골라 창 밖으로 밀어냈다. 소녀의 영혼이 자기를 죽이기 전에 먼저 희생자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누군가 죽어야 아이들은 안도했다."(205쪽)
오늘의 희생자로 선택된 '나'가 아이들에게 등을 떠밀려 창 밖으로 몸이 반 이상 넘어갔을 때,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각 반마다 그런 아이들이 하나씩 창가에 매달려 있다. 눈이 마주친 희생자 후보들은 안간힘을 쓰며 "네가 먼저. 제발"을 외치고, 견디다 못한 누군가가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제서야 이곳엔 평정이 찾아든다. 오늘의 죄책감과 내일의 공포가 온 정신을 지배하는 곳. 작가에게는 이곳이 세계의 원형이다.
아버지가 그려준 허술한 약도를 들고 미로 같은 밤거리를 밤새 헤매는 청년의 이야기 '어디쯤'이나, 낙타의 자식으로 태어나 사막을 오로지 견뎌야 할 뿐인 펭귄과 자라의 이야기'새끼, 자라다' 역시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맞닥뜨린 출구 없는 현실의 알레고리임은 대번에 눈치챌 수 있다.
힘의 크기는 거리와 질량의 곱이라는 공식을 떠올릴 때, 최진영 소설의 에너지값은 거리보다는 주로 질량에서 기인한다. 각 인물의 내면에 축적된 공포와 분노, 불안과 절망의 질량이 소설을 폭발시킨다. 부모의 산소에서 현금 3억이 든 돈가방을 발견한 형제 부부가 돈을 놓고 벌이는 찌를 듯 날카로운 긴장('돈가방')은 별다른 후속 사건 없이도 끝끝내 이어진다. 두 쌍의 부부가 다양한 조합을 구성하며 서로를 향해 퍼붓는 비난의 언사와 질책의 몸짓, 멸시의 한숨과 경멸의 눈빛이면 충분하다.
'창'의 왕따 비정규직 '나'는 고열로 쓰러질 것 같지만, 자리에 앉아 마음껏 졸 권리도 없다. 그저 당하기만 하면서, 기껏해야 동창의 블로그를 훔쳐보며 그녀의 행복을 질투하고, 그녀가 언제 불행해질지 기다리는 것만이 거의 유일한 여가활동이다. 동료들이 아픈 나만 빼놓고 식사하러 나간 점심 시간, 나는 옆자리 동료의 메신저 대화창에서 나를 욕하는 직원들의 대화를 엿보게 된다. 폭발인지 붕괴인지, 내면의 뭔가가 사라져버리고, '나'는 모든 직원들의 컴퓨터에서 주요 문서들을 삭제해버린다.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려다 실장실의 통유리에 비친 나를 잠깐 쳐다본다. 당장 뒈져버려도 시원찮을 걸레 같은 년이 부스스한 몰골로 질질 울고 있다."(225쪽)
작가의 등단작이자 소설집 마지막에 실린 단편 표제작 '팽이'는 엄마에게 버림 받고 오빠와 단둘이 살아가는 소녀 재이의 성장담을 뭉클하게 그린다. 옛 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서럽고도 아린 이야기다. 엄마도, 오빠도 모두 떠나고 홀로 남아 이제 성인의 문턱에 들어선 '나'는 이제 "지구처럼 단단하고 둥그런 돌덩이가 되어버린 방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걷는다. 힘겹게 홀로 선 '나'가 떠나는 마지막 장면의 마지막 문장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을 하나의 이미지를 읽는 이의 망막에 새긴다. "받침이 있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여자아기가 강아지풀처럼 마루에 앉아 짤각짤각 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혹은 너는, 얼마나 힘겹게 자라왔느냐.
출판사는 이 작가를 소개하는 보도자료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우리 문학의 낭보"라는 작은 제목을 달았다. 기꺼이 인용하고 싶은 문구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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