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네로 이사 오기 며칠 전 머리카락에 껌이 덕지덕지 붙어버린 분희는 어쩔 수 없이 까까머리가 됐다. 엄마는 금세 자랄 거라고 위로해주지만, 이런 머슴애 같은 모습으로 새 친구들과 만나게 되다니, 분희는 자꾸만 주눅이 든다. 노란 은행나무 밑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온종일 주변을 기웃거리는 분희. 하지만 친구들은 빡빡머리에 분홍 머리띠를 하고 나타난 분희를 보고 '남자야, 여자야?'키득거린다.
서양화를 전공한 이선미씨가 쓰고 그린 는 하나의 이야기를 '나'와 '우리'의 두 가지 입장에서 보여주는 독특한 구조의 그림책이다. 앞장부터 읽기 시작하면 친구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뒷장부터 읽기 시작하면 분희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두 개의 이야기는 낯선 친구들 앞에서 가슴앓이를 하던 분희가 마침내 '깍두기'가 돼 친구들과 어울려 고무줄 놀이를 하는 하나의 결말로 따스하게 수렴된다. 수묵화처럼 잔잔한 옛 동네의 정경과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을 섬세하게 살린 필치가 아련하게 마음을 물들일 때, 아마 아이 마음의 평수는 몇 뼘쯤 커져 있을 것이다. 글로연 발행ㆍ46쪽ㆍ1만2,000원.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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