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불면증이 오곤 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나는 이즈음 불면에 시달린다. 어쨌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출근해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처리해야 할 일들을 해치우고 서둘러 L선생님을 뵈러 갔다.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선생님은 2주 전 뇌출혈(뇌경막 외출혈)로 쓰러지셨고 응급을 요하는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경과는 매우 좋아서 빠르게 회복하고 계시는데 병원에서는 계속 예의주시를 해야 한다고 했단다. 덕분에 선생님은 평소에 30분마다 내방객을 맞으실 정도로 바쁜 생애를 보내시다가 일생일대 처음으로 사치스러운 휴가를 누리고 계시다. 선생님은 수술을 받으시면서 머리칼을 짧게 잘랐는데, 대여섯 살 유년의 까까머리로 돌아왔다는 말씀을 하셨다. 순수했던 시간으로 돌아오기 위해 길고 긴 세월을 돌고 돌았다고. 올해 팔순이신 선생님은 농경사회부터 산업화, 민주화, 디지털 혁명과 금융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를 모두 겪은 자로서의 특별한 회한을 말씀하셨다. 그 표정엔 후학들에게 지혜를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 배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의 오해완 달리, 그가 얼마나 고독한 사람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설명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결코 피하고 싶지 않은, 즐기고 싶은 과제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불면증이 좀 더 가겠지.
소설가 김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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