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한복판에 화장실 배치한 잡스… 목욕 중 '유레카' 외친 아르키메데스오두막에 잠적해 최고 명곡 쓴 밥 딜런… 뇌를 느슨하게 놓았을 때 창의력 쑥쑥실증적 뇌 연구 인용 창의력 근원 탐구… 뇌 우반구가 창의적 재능의 출발점
세계적인 생활용품 기업 프록터앤드겜블(P&G)이 ‘스위퍼'라 불리는 일회용 대걸레 타월을 발명해낸 공로는 하버드, MIT(매사추세츠주립공과대) 전체 교수진보다 많이 보유한 박사급 연구원들의 것이 아니었다. 피부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세정력이 강한 바닥청소제를 개발하기 위해 단순히 일반인들이 걸레로 거실청소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던 위탁업체 디자이너들의 공이었다.
밥 딜런의 생애 최고 명곡인 ‘라이크 어 롤링스톤'은 그가 엄청난 음악적 열정으로 똘똘 뭉친 채 전 미국을 누비며 곡을 써댔던 전성기 동안 나온 게 아니다. 이 노래는 그가 작곡과 음악 활동을 다 집어치우겠다 선언하고 오토바이를 몬 채 혈혈단신 외딴 오두막으로 잠적한 후, 그야말로 ‘통찰의 가려움’을 겪으며 텅 빈 노트에 터질듯한 상상력을 자연스럽게 토해낸 결과물이다.
왜 사람들은 세상을 들썩이는 아이디어, 창의력의 결과물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과정, 예를 들어 커피숍이나 술집에서 노닥거리던 중 아니면 화장실에서 만난 동료와 잡담하다 쏟아내곤 하는 것일까.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 사과나무 아래에 섰던 뉴턴이 경험한 그 통찰의 순간, 창의성이 폭발하는 경험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는가. 현대과학은 번개처럼 반짝하며 마치 신의 선물인 양 인간의 뇌에서 발화하곤 하는 창의성과 아이디어 발현의 순간을 밝혀낼 수 있을까.
스물여섯 젊은 나이에 과학과 문학의 소통을 꾀한 는 책으로 뇌과학 분야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던 과학저술가 조나 레러. 그가 이번엔 지금까지 천재들의 고유 영역이라 믿어져 온 ‘창의성과 상상력의 근원'을 파헤쳤다. 밥 딜런처럼 세상을 뒤흔든 아이디어와 통찰은 속박을 벗어나 뇌를 느슨하게 놓았을 때,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픽사애니메이션 직원들처럼 회사 공간 한가운데에 놓인 화장실을 자주 오갈 때 나온다는 재미있는 해석들을 이 책에 가득 담았다. 기존의 창의력 관련 책들이 단순히 상상력을 기르는 방법 등에 치중한 것과 달리 이 책은 실증적인 뇌 연구 결과를 인용해 창의력의 근원을 찾는데 집중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저자는 다양한 뇌 연구 결과를 인용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초일류라 불리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창의력을 뿜어낸 원동력을 세밀하게 분석해 보여준다. 우선 책은 뇌의 우반구가 통찰, 즉 대단한 아이디어가 솟는 출발점이란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신경과학자들 사이에 ‘우반구는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말이 상식으로 통하였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성적인 언어사용이 아닌, 은유와 내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역할을 우반구가 한다는 사실을 정설로 세우고 있다. 사람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보도록 이끄는 우반구야말로 창의적 재능의 출발점이란 이야기이다.
책은 이어 통찰의 순간, 감마파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뇌의 물리적 위치가 전측 상측두회이며, 창의력의 근원이 되는 뇌의 알파파도 바로 이곳에서 꾸준히 발산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핵심은 바로 이 알파파가 따뜻한 물로 목욕하는 등 심신이 편안할 때 많이 발산된다는 것이다. 이는 ‘유레카’를 비롯해 왜 그토록 많은 ‘통찰'이 목욕을 하는 동안 나오는지를 설명한다. 물론 여기서 목욕은 누군가에겐 바에서 수다를 떠는 행동일 수 있고, 여행을 떠나기 위해 항공사 카운터 주변을 오가는 행위일 수 있고, 아마도 밥 딜런에겐 오두막으로의 잠적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주어진 문제에서 떨어질수록, 즉 방관자의 입장에 서면 오히려 쉽게 답을 내놓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휴식을 상징하는 바다와 하늘의 색인 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 경우, 더 창의적으로 바뀐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대로 경직과 금지를 상징하는 빨간색 공간에선 능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창의성의 근원을 찾다 보면 의외의 행로가 밝혀지기도 한다. 저자는 어째서 그 많은 천재가 마약에 탐닉하고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는지 설명한다. 마약의 부작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막대하지만 암페타민(속칭 필로폰)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양을 증가시켜 창작의 능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약간의 우울함이 주위의 스포트라이트를 또렷하게 좁혀 우리를 더욱 용의주도하고 끈질기게 만든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저자는 “겁먹은 상상력을 놓아주라”고 말한다. 연주회를 앞두고 그야말로 연주에 대한 생각을 놓아버리면서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된 요요마, 강박과는 거리가 먼 재즈연주자들이 즉흥연주에 강하다는 점. 그리고 녹음기를 켜놓은 채 곯아떨어졌던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가 다음 날 아침 테이프에서 명곡 ‘아이 캔트 겟 노 새티스팩션(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발견한 기적. 이들은 하나같이 ‘언제나 아이같다’라는 말도 듣는다. 일상의 X를 뜻밖의 Y로 연결해내는 능력. 어쩌면 우리 모두 이미 태어날 때부터 주머니 속 어딘가에 갈무리해 놓고 있었는지 모른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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