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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과학수사 기법으로 인정받다

입력
2013.09.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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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초 서울 논현동 일대에서는 여성 운전자들만 흉기로 위협해 현금과 귀금속 등을 훔치는 오토바이 강도가 활개를 쳤다. 3명의 여성들로부터 낚아챈 피해액이 5,700여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도주해 단서를 찾기 어려웠다. 수사가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을 때 피해자 한 명이 무의식을 더듬어 기억해 낸 범인의 오토바이 번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찰 과학수사 요원의 최면 덕분이었다.

이처럼 심심치 않게 사건을 해결하지만 과학과 미신의 중간쯤으로 치부되던 최면이 과학수사기법의 하나로 당당히 인정을 받았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방경찰청별 과학수사 관련 지침을 통합해 9일 발령된 과학수사 규칙(경찰청 훈령)에 '법 최면(Forensic hypnosis)'이 처음 포함됐다. 지문ㆍ족적ㆍ윤적(타이어 자국) 감정, 음성과 영상분석 등과 나란히 과학수사기법에 포함된 것이다.

법 최면은 의료계의 심리안정이나 치료용 최면과 구분되는 수사용 최면이다. 규칙에 따르면 수사 목적에 적합할 때 녹화시설이 설치된 곳에서만 실시할 수 있다. 피의자나 용의자는 대상에서 제외되고, 피해자와 목격자만 당사자의 동의를 받아 최면을 걸 수 있다. 최면 결과는 서식에 맞춰 담당 경찰관에게 알려줘야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 최면 수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방법이 정립될 필요가 있었다"며 "법으로 정한 것이 아니고 경찰 규칙이지만 수사기법으로 인정받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FBI 등은 이미 1950년대부터 법 최면을 수사에 이용했다. 국내에 처음 도입된 것은 지난 1999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범죄심리과를 중심으로 대한법최면수사학회가 창립됐지만 수사관들의 인식부족으로 활동은 미미했다.

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력 사건들에서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주목을 받게 됐다. 2006~2008년 경기 서남부에서 여성 7명을 연쇄 살해한 강호순 사건 당시 경찰은 법 최면 수사관을 투입해 목격자들로부터 강씨의 생김새 등 정보를 얻어냈다. 2009년 고 장자연씨 사건에서도 경찰은 장씨와 부적절한 술 자리에 참석한 인사들을 찾아내기 위해 법 최면을 활용했다.

2011년 10월 경찰과 군 수사관들이 주축이 돼 한국법최면수사연구회를 발족하면서 국내 법 최면에는 탄력이 붙었다. 현재 경찰에는 전문수사관 29명이 있다. 이들은 피최면자를 심리적으로 안정시키며 기억을 되짚도록 유도해 범죄와 관련된 정보를 쏙쏙 뽑아낸다. 강력사건, 뺑소니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는 것은 물론 어릴 적 기억을 떠오르게 해 이산가족 찾기에 이용하는 등 적용 범위도 폭넓다.

그러나 최면 상태에서 한 진술이 법적 증거 능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지식과 성향, 최면을 시작할 때 어떤 암시를 주는가 등에 따라 진술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현재 수사기관은 법 최면 결과를 수사 방향을 설정하거나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단초로 삼고 있다. 법최면수사연구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태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위는 "규칙이 만들어져 법 최면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틀은 닦았지만 최면 상태의 기억이 법적인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아직 연구, 검토해야 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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