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유선일 전문위원(당시 부장)은 "혁신 냉장고를 만들라"는 특별한 숙제를 받았다. 냉장고의 개념 자체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라는 주문이다.
1986년 입사 후 냉장고 TV 오디오 등 가전만 20년을 다룬 베테랑 디자이너인 유 위원은 후배 디자이너 3명과 별동대를 만들어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그는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은 제품이 아니라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가정집 4군데를 골라서 부엌에 카메라를 달았다. 소비자들이 냉장고를 어떻게 쓰는 지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보름 가까이 관찰한 결과 4인 가족 기준으로 하루 평균 40회 정도 냉장고 문을 여닫지만 대부분 물, 음료수, 과자, 각종 소스 등 간단한 물건을 꺼내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유 위원은 "작은 물통 하나 꺼내려고 큰 문을 여닫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 여닫는 횟수를 줄이는 방법 찾기에 나섰다.
4개월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은 기존 냉장고 문 위에 자주 쓰는 물건만 보관하는 또 하나의 문을 덧대는 '도어 인 도어'라는 기발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2개의 문이 달린 기존 양문형 냉장고와 달리 총 3개의 문을 달았다. 가장 바깥 쪽에 있는 문은 음료수 등 자주 쓰는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따라서 물을 먹기 위해 많은 물품을 보관한 냉장실 문을 여닫지 않아도 돼서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50년 전 등장한 GE 냉장고에 물병을 넣을 수 있는 작은 홈바가 달린 냉장고와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홈바 냉장고는 문을 여닫는 횟수를 크게 줄이지 못했다.
문제는 문을 하나 더 달면서 안쪽 문과 바깥 문 사이에 온도 차이가 발생하면서 문이 뒤틀리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유 위원은 1년 가까이 엔지니어들과 밤을 새우며 연구한 끝에 온도 차이가 발생해도 뒤틀리지 않는 구조물을 새로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것이 LG전자의 도어 인 도어 냉장고의 성공 비법이었다.
유 위원은 힘들게 개발한 냉장고를 경영진에게 선보이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가장 바깥 쪽에 있는 음료수 보관을 위한 문을 여는 순간, 경영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당연히 음식을 보관한 선반이 보일 줄 알았는데, 또다른 문이 나타났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게 무슨 마술이냐"는 경영진의 반응에서 '매직 스페이스'란 이름이 탄생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매직 냉장고가 세상에 빛을 봤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12일 LG전자는 매직 스페이스 냉장고를 전세계에서 100만대 이상 판매하며 새로운 '밀리언셀러' 가전을 탄생시켰다.
이제 또하나의 문을 덧대는 매직스페이스는 LG전자 냉장고의 상징이 됐다. LG는 현재 양문형 냉장고 10대 중 6대에 매직 스페이스를 적용했고, 지난해 일반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에도 채택했다.
다른 업체 제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성도 '푸드 쇼케이스' , 위니아만도는 '에코 스페이스'라는 이름으로 같은 방식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유 위원은 "큰 성공을 거둔 제품도 결국은 작은 아이디어와 고민에서 시작한다"면서 "아직 마술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뜨거운 냄비 때문에 문을 여닫느라 고생하는 주부들 모습에서 무릎이나 발끝으로도 문을 여닫을 수 있는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곧 그런 냉장고도 등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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