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추가 차명계좌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라 전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는 그가 전방위로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의혹과도 연결돼 있어 향후 정치권으로 불똥이 튈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당국은 봐주기 조사 비난에 직면했다.
금융감독원은 신한금융투자에 대해 금융실명제법 위반과 관련한 부문검사를 실시한 결과, 직원들이 실명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을 적발하고 기관주의 및 과태료 3,750만원을 부과하고, 임직원 12명도 무더기 징계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 부문검사는 라 전 회장이 신한금융투자의 차명계좌를 통해 지주 주식을 거래하고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 제기에 따라 실시된 만큼 결과에 관심이 쏠렸다.
금감원에 따르면 해당 증권사의 모 지점장은 신한금융지주 직원이 재일동포 주주 7명 명의로 계좌 개설을 요청하자 실명 확인을 하지 않고 계좌를 개설해줬다. 또 직원 9명은 2004년 4월∼2011년 12월 신한금융지주 차명계좌 등 7개 계좌에서 신한금융지주 주식 등의 매매주문을 받아 167차례, 176억6,800만원의 주문을 냈지만 관련 기록을 남겨두지 않았다.
금감원은 이번에 추가로 드러난 차명 주식계좌가 라 전 회장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증권계좌로 자금이 수시로 이동하며 신한금융지주 주식 수만 주씩을 사고 판 증거가 발견된 만큼, 라 전 회장은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현행법상 차명계좌를 통한 금융기관 임원의 자사주 취득은 내부정보 이용 가능성이 커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금감원은 차명계좌 개설만으로는 징계 사유가 안 돼 징계 대상에서 라 전 회장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차명으로 거래가 이뤄진 수백억 원의 행방이다. 증권계좌가 확인됨에 따라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에서 돈의 흐름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도 차명 주식계좌를 통한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조사하면서 자금 흐름을 살펴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의 여부가 나오면 검찰에 통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라 전 회장의 비자금 실체가 드러날 경우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라 회장의 지시로 전달됐다는 이른바 '남산 3억원'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건넨 50억원의 실체가 대표적이다.
남산 3억원은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측에 전달됐다고 알려진 자금이며, 박연차 회장에게 건넨 자금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발견됐다. 일각에서 "라 전 회장이 정권을 불문하고 비자금을 뿌렸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당시 검찰은 각각 "신한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라 회장의 투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다. 불법 정치자금 전달 여부와 함께 그가 세 자녀에게 수십억 원을 증여했다는 의혹이 밝혀질지도 주목된다.
라 전 회장의 차명 주식계좌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금융당국에 대한 '라응찬 봐주기' 조사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금감원은 2010년 조사 결과 발표 당시 제일동포 4명 명의의 차명계좌를 확인, 라 전 회장에 3개월 직무정지 처분만 내렸다. 당시 정치권과 금융권에서는 MB정부 실세들이 상주 출신인 라 전 회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회 정무위 소속 정호준 민주당 의원은 "추가 차명계좌가 드러난 것만으로도 금융당국이 당시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그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조사도 엄격하게 진행됐다"고 해명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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