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돌이켜봐도 어처구니없다. 그날 점심시간 교무실에서 국사 선생은 7개월 연속 국사 시험 100점 만점의 신화를 이어가던 학생에게 "적당히 하라"고 했다. "고고학자가 되고 싶다"고 변명(?)하자 픽 웃었다. "잘해야 내 꼴"이라더니 선생은 찬밥에 우유를 붓고 김치까지 말아 먹었다. 기괴한 분홍빛 국물을 바라보며 나는 꿈을 접었다.
칭찬은커녕 냉소를 날린 시골 중학교 국사 교사는 요즘식으로 하면 자기주도형 학습으로 수업을 이끌었다. 학생들이 커다란 종이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세력 판도를 직접 그려와 교과서 안팎의 주제를 논하는 식이었다. 수업이 쏠쏠하니 달달 외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참고서도 모자라 한국사 전질을 사달라고 졸랐고, 만파식적 얘기에 홀린 나머지 트로이 유적(실은 그보다 앞선 시대)을 발굴한 하인리히 슐리만을 우상으로 삼았다. 그런데 기껏 열애하게 해놓은 중매쟁이가 이제 대충 사귀라니 황당할밖에.
선생의 진심은 도시 고교에 진학하고 나서야 와 닿았다. 학기초 급우들이 성문영어니, 수학정석이니 선행학습에 열을 올릴 때, 한가로이 를 펴놓던 호기는 대학진학이란 현실 앞에 간단히 무너졌다.
당시 학력고사에서 필수과목이라곤 하나 국어 영어 수학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국사의 배점(25점)은 "적당히 하라"의 거부할 수 없는 이유였다. 국사 성적만으론 이른바 좋은 대학에 갈 수 없고 결국 취업도 제대로 못할 테니 "밥도 돈도 안 되는" 과목이 맞았다. 공교롭게도 국사 교사였던 고3 담임마저 "영어 수학 점수를 올리라"고 했으니 말 다했다. 고교시절 국사는 지긋지긋한 밑줄 긋기와 주요 사건 및 연도의 약자를 조합한 유치한 암기 방식이 난무했다. 학생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학력고사에 잘해야 한 문제 나온다는 현대사는 대충 넘어갔다. 내가 치른 1993학년도 학력고사를 끝으로 국사는 필수과목에서 밀려났고, 내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래도 가끔 역사 신간을 뒤적이고, 역사드라마에 오류나 왜곡이 없는지 여전히 찾아보고 따져보는 건 중학시절 국사 교사가 안겨준 국사에 대한 징그러운 정(情) 때문이다. 방송에서 학생들이 "도시락폭탄을 던진 분"을 "안중근"이라고 답해도 실소가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교육의 잘못이므로. 그런 한국사가 24년 만에 필수과목이 된다니 반가웠다.
하지만 돌아가는 모양새가 불안하다. "대입 수능으로 들어가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라는 대통령의 안일한 발언, 발견된 오류만 298건이나 되는데도 "좌파의 공격" 운운하는 한 교과서 저자들의 적반하장이 그렇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둘 것인가 등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자문은 낄 틈이 없으니 딱한 노릇이다.
대통령 말씀에 벌써 입시학원들이 환호한다는 소식은 좋은 징후가 아니다. 입시 부담에 찌든 학생들에게 몰아 가르치는 주입식 암기 교육은 득보다 실이 많다. 게다가 공고한 국ㆍ영ㆍ수의 틈바구니에 낄 한국사는 예전처럼 '계륵'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교육과정과 입시제도의 혼란을 어떻게 잠재울지에 대한 고민과 비전이 필수과목 지정에 앞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한 국사 교사가 "교과서란 명사를 붙이기 민망하다"는 문제의 교과서는, 저자들의 주장대로 다양성을 존중하더라도,'사실'은 왜곡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역사를 기만하는 범죄다. 편향을 바로잡겠다며 이미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사적 사실마저 뒤틀고 고치는 행위 역시 자제했어야 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득달같이 정치권으로 달려가 보채는 태도도 학자답지 못하다.
이들의 피난처로 돌변한, 여권 실세가 만들었다는 역사교실의 목표는 "좌파와의 역사전쟁 승리"다. 부디 어린 학생들은 전쟁터로 내몰지 말기 바란다. "노량진 강사가 다 좌파"(여당 의원)라는데, 내 스승의 이념성향은 잘 모르겠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국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르쳤다는 것만 기억할 뿐. 다만 거의 30년 만에 스승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은듯하다. "선생님, 국사 공부하면 밥 대신 표(票)가 나오나 봐요."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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