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12일 청와대의 전격적인 3자 회담 제안을 받고 극도로 심사 숙고하는 모습이었다. 전병헌 원내대표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이날 낮 12시쯤 전화로 회담을 제안받고 '수용여부 유보'란 공식입장을 발표하기까지 4시간이나 걸린 점도 고민의 정도를 가늠케 한다. 대통령에게 향하던 '정국 정상화의 공'이 갑자기 민주당에 넘어온 탓이다.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당 지도부와 숙의를 거듭하던 김한길 대표도 기자들에게 "제안의 배경과 의도를 파악 중"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당초 김 비서실장이 김 대표에게 전화를 했지만 천막당사에서 안철수 의원의 방문을 맞이하던 김 대표는 "행사 끝나고 얘기하자"며 통화를 미뤘다. 그러자 김 비서실장은 전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일방적인 '통보'형태를 취했다고 한다.
민주당은 청와대 제안에 일단 시간을 버는 방식을 택했다. 김관영 수석대변인은 "오늘 제안에 대해 정확한 의도와 논의될 의제를 추가 확인한 후에 공식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이 수용여부를 보류한 것은 의제도 확정되지 않는 마당에 최소한 국정원 개혁 문제등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해야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일종의 기싸움인 셈이다. 김 대변인도 "국정원 개혁 등을 통한 민주주의 회복 방안이 회담의 주요 의제가 돼야 함이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의제가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회담에 응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웅래 당대표 비서실장은 "만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진위가 불분명하다"며 "청와대 측에 내용도 불확실한데 그대로 발표하면 일을 그르친다고 했는데도 강행했다"고 불쾌해했다. 지도부에서는 "청와대의 전향적 태도를 가늠할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회담수용 보류는 당내사정과도 무관치 않다. 43일째 장외투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회담에 응했다가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당내 강경파들의 강한 반발을 살 수 있다는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486출신의 한 의원은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광장의 분노가 극에 달했는데 당대표가 노숙투쟁까지 벌이고도 대통령이 부른다고 들어가면 되겠느냐"며 "해외순방 성과에 대한 대통령의 업적 띄우기에 들러리만 서게 될 것"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청와대 제안을 거부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중론이다. 김 대변인도 "회담의 형식은 크게 구애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3자회담 수용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이 회담 제안을 곧바로 거부하지 못한 것도 정국 정상화를 차버렸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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