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위탁 택배기사인 조용태(59)씨는 오전 4시에 눈을 뜬다. 오전 4시 30분 경기 부천시의 집을 출발해 오전 5시부터 5~6시간 동안 서울 양천우체국에서 화물 분류작업을 한다. 집하장에 부려지는 수천 개의 화물 가운데 자신의 구역(양천구 신정동)에 배달할 화물을 분류해 출고시스템에 입력하고 차에 싣는 일이다. 지난 6일 조씨는 오전 11시에 배달을 시작, 오후 9시가 넘어 일을 끝냈다. 점심과 저녁은 빵으로 때웠다.
사장 아니면서 사장 노릇
1998년부터 CCTV 카메라 렌즈를 제조하는 소규모 공장을 운영하다 억대의 빚을 떠안고 공장을 정리한 조씨는 2003년 택배기사일을 시작했다. 10년이 됐지만 아직 빚 5,000만원이 남아 있다. 화물의 개당 수수료(5㎏ 이하)는 968원. 10%의 부가가치세를 빼면 하루 11만원(130개 기준) 정도가 떨어진다. 요즘은 명절 특수기라 하루 160개쯤 배달하지만, 평상시엔 토요일까지 일해야 한 달에 280만~300만원 정도를 손에 쥔다. 여기서 기름값(25만~30만원), 차량유지비(10만원), 자동차 보험료(8만원)와 위탁회사에 내는 지입료(영업용 번호판 대여비) 8만원 등 총 50여만원이 고정비용으로 나간다. 아내(55), 아들(28)과 함께 살고 있는 조씨는 "지금 벌이로는 이자 내기도 바쁘다. 몸이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조씨와 같은 우체국 위탁기사는 전국에 1,800명 정도가 있다. 이들이 받는 처우는 거의 비슷한데 우정사업본부가 일방적으로 배달단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우정본부의 기준 배달단가는 개당 1,430원. 각 우체국들이 이 단가를 기준으로 입찰을 실시하면, 위탁업체들은 정부의 '최저낙찰 지침'에 따라 80%선(약 1,150원)에서 우체국과 계약을 맺게 된다.
기사들이 보통의 노동자라면 노사 간 교섭을 통해 임금 현실화를 압박하겠지만 위탁 택배기사는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다. 법적으론 계약을 맺고 일하는 자영업자에 가깝다는 뜻이다. 이론상 계약을 통해 단가를 높이거나 물량을 많이 받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사실은 우정본부가 설정한 단가에 매여 밤낮 없이 일해도 넉넉한 임금을 못 받는 게 현실이다.
게다가 우정본부는 사용자처럼 기사들의 행동을 규제한다. 위탁업체들은 우정본부의 지침에 따라 기사들에게 '고객으로부터 소송이 제기되거나 우정본부가 패소할 경우 소송비용 일체를 기사들이 부담한다', '배달원이 구성하는 어떤 단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담긴 계약서를 쓰도록 한다. "지침을 통해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지 못하도록 하는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간섭한다"고 위탁기사들은 말하고 있다. 최근 우정본부가 일선 우체국에 파업(운송거부) 가능성이 높은 기사 블랙리스트를 돌리고, 위탁업체에 해고(계약해지) 압력을 넣은 일이 알려지면서 우정본부가 실질적 사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체국 위탁기사들을 대표하는 우체국 위탁기사 비대위의 핵심요구는 "우정본부의 배달단가 결정에 기사들을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다.
복잡한 고용구조의 굴레
3만5,000명에 달하는 민간업체 택배기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서 택배배달을 하는 경력 11년 차의 손경민(45)씨는 "나를 고용한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손씨는 택배회사 CJ대한통운과 계약한 지입회사에 지입료(월 19만원)를 내고 여기서 임금(수수료)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손씨를 통제하는 회사는 CJ대한통운이다. 손씨의 출ㆍ퇴근 시간, 휴가, 배달물량을 CJ대한통운 관리사무소 소장이 정한다. 임금이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해야 하는 대상은 CJ대한통운이다. 지난 5월 택배기사 1,000여명의 파업(운송거부)으로 폐지되기는 했지만 CJ대한통운은 '배달 전 송장 입력 누락시 건당 300원, 고객 응대시 욕설하면 10만원' 등 8가지 페널티를 담은 SLA라는 규약을 도입하려 했었다. 손씨는 "회사측은 분실이나 사고 발생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송장의 보관관리까지 기사들에게 맡기고 있다"며 "수수료(개당 830원)는 깎으려 하면서 책임은 기사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 부평구 청전동에서 택배배달을 하는 이상용(41)씨는 사실상 회사가 3개다. 지입료(월 16만원)를 내는 지입회사, 임금을 지불하는 지역 대리점과 각각 계약을 맺고 있다. 지역 대리점은 CJ대한통운에서 받은 수수료 중 10%를 떼고 이씨에게 개당 700원을 준다. 배달단가를 정해 사실상 이씨의 생존을 결정하는 회사는 물론 CJ대한통운이다.
이처럼 고용관계가 복잡해진 탓에 택배기사들은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사측과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 개선을 얻어내기가 여의치 않다. 택배회사들은 직접 고용을 피하고 4~5명 정도로 이뤄진 영세한 지역대리점 체제를 통해 기사들의 세력화를 막으려 한다는 것이 노동계의 시각이다. 이씨는 "과거 CJ같은 운수회사들은 대리÷?내려는 이들에게 '일과가 끝나고 기사들끼리 5명 이상 모이지 않도록 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영업권을 주기도 했다"며 "택배회사가 규약으로 기사를 통제하면서 기사들이 조직화하는 것은 막고 있어 형편이 나빠져도 손쓸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윤애림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는 "택배기사는 특수고용직이지만 사실상 노동자의 성격을 갖고 있어, 노조 결성, 단체 교섭, 단체행동을 보장해야 하지만 정부는 이들을 여전히 자영업자로 보고 있다"며 "특수고용직을 노동자로 인정해 진짜 사용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입법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