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 박노수 화백의 가옥이 종로구 1호 구립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1938년 친일파 윤덕영이 딸에게 지어준 이 집은 박 화백이 73년 사들여 올해 2월 별세할 때까지 거주했다. 2011년 박 화백이 자신의 작품과 소장품 1,000여점을 종로구에 기증하기로 하면서 지역 첫 구립 미술관 건립 계획이 추진돼 12일 대중에 선보이게 됐다.
2층짜리 가옥은 신문물이 들이닥쳤던 20세기 초 사회상을 증거하듯 한국, 중국, 서양의 건축 양식이 한데 뒤섞여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건물에 한옥 서까래를 걸고 지붕에 양기와를 얹힌 식이다. 내부를 둘러보면 아담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벽난로가 3개나 있어 당대 윤덕영이 얼마나 위세를 떨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루 바닥과 문짝, 문설주에는 모두 오래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 홍송이 쓰였다.
윤덕영이 딸의 행복을 기원하며 지은 집이 박 화백의 손에 넘어간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한국화 1세대인 박 화백은 해방 이후 국내 화풍에 남아 있던 일제의 잔재를 떨쳐 버리고 독자적인 화풍을 시도, 한국화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힘쓴 인물이다. 집에는 80년대 돌연 교수직을 그만 두고 작품 활동에 매진한 박 화백의 체취가 곳곳에 배여 있다.
종로구는 개관 전시로 '달과 소년'을 기획, 박 화백의 작품 26점을 내걸었다. 작가 고유의 화풍을 한눈에 보여주는 수묵 담채화 '류하'와 '달과 소년'등을 감상할 수 있다.
종로구청은 가옥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벽에 직접 그림을 걸지 않고 전시용 임시 벽을 설치했는데 이 때문에 지금은 창문이나 베란다가 가려져 있는 상태다. 박노수 미술관 학예사이자 박 화백의 막내딸인 이선씨는 "조만간 임시 벽을 치우고 원래 있던 가구를 놓아 작가가 생전에 거주했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전시도 기획 중"이라고 밝혔다. 박 화백이 작품과 함께 기증한 고가구와 수석, 골동품 등은 종로구청사 내 수장고에 따로 보관 중이다.
부암동 윤동주 문학관, 통의동 한옥마을, 통인동 시인 이상 집터에 더해 옥인동 박노수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종로구의 문화∙예술 명소는 목록이 더 풍성해졌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누하동의 이상범 화백 화실과 원서동에 있는 고희동 작가의 가옥과도 연계해 강력한 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박노수 미술관 개관 전시는 12월 25일까지 계속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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