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화학무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처음 미국의 태도는 지금과는 달랐다. 언론에서 연일 민간인 피해자의 참혹상을 대서특필할 때도 "우려한다. 보도를 확인 중"이라며 소극적이었다. 사실 시리아 내전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전이 터진 지 벌써 30개월째이고 그 동안 사상자 10만명, 올해 들어서는 매달 5,000명씩 사망할 정도로 혼란이 극심해졌는데도 미국 정부가 한 것은 반군에 소규모의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정도였다. 지난해 화학무기 사용을 군사력 동원의 '레드라인'으로 정한 것도 미군개입의 길을 트는 '인계철선'이라기 보다는 시리아 불개입을 위한 명분으로 삼았다는 해석이 더 많았다. 그래서 '미국인의 피해가 없어서' '아사드 정권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등의 말도 나돌았다.
그랬던 미국이 국제여론이 들끓자 180도 돌변했다. 유엔안보리 결의 같은 국제법적 절차를 무시하고라도 시리아를 폭격하겠다고 주변국과 의회를 상대로 공세를 폈다. 화학무기 사용 주체에 대한 유엔조사단의 평가가 아직 나오지 않았고, 군사공격의 전략적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리아를 응징하지 않으면 나쁜 선례를 남긴다"며 난데없이 북한을 거론해 우리를 난감하게까지 했다.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과거 사례나 미국 정부 관리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어보면 추측은 할 수 있다. 2년 전 리비아 내전 때 미국은 "리비아는 미국의 핵심이익이 아니다"라며 발을 뺐다. 안보리 결의를 받고 군사공격을 할 때도 카다피를 몰아내야 하는지, 민간인 보호에 국한해야 하는지 갈팡질팡했다. 지금 미국 정부 수뇌부가 연일 시리아에 "제한된 공격"을 강조한 것과 비슷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며칠 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소규모 공격"이라고 했다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뭐냐를 놓고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의도는 분명해진다. 아사드 정권 축출 같은 사태의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에서의 제한적 개입이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군사개입이)아사드 정권을 군사적으로 뒤집기보다는 화학무기 사용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기 위한 계획된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수십년 동안 고착된 중동의 정치지형도를 깨는 것은 큰 모험이다. 독재나 민주화라는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기에는 중동문제는 복잡다단하다. 미국이 2년이 훨씬 넘도록 시리아 사태를 방관한 데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서 반군이 미국 편이 된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 것도 크다.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도 만만치 않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정보기관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 논란, 표적 세무조사, 리비아 벵가지 영사관 피습 사건 등으로 수세에 몰려 있다. 또 다음달 국가채무한도 협상, 건강보험 개혁법 예산 확보 등 야당과의 험난한 싸움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해법이 보이지 않는 오바마로서는 시리아 군사개입이 정국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로 생각했을 수 있다. '대통령이 작아질 때 외교를 키우라'는 것은 난국의 해법을 밖에서 찾으라는 워싱턴의 오래된 정치속설이다.
미국만이 세계를 이끌 수 있으며 변화와 개혁을 위한 군사력 사용도 미국만이 갖는다는 게 전후 지금까지 계속돼 온 '워싱턴 룰'이다. 하지만 세상은 미국이 국제분쟁에 개입해야 할 이유보다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더 많아지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중동에서는 민주화 혁명 이후 군부와 이슬람주의, 세속주의 세력이 서로 얽혀 있어 어느 쪽도 간단히 평가하기 어려워졌다. 국내 여론도 냉전 때와는 달리 다른 나라의 일에 간섭하는데 반대하고 있다. 이번 시리아 사태가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야 한다는 시대착오적 '소명의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전 표방한 '다자주의'도 그런 뜻일 것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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