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당국이 공무원과 공공부문 종사자의 임금 동결까지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건 내년 재정 수입이 350조원 내외로 예상되는 총 재정지출 규모에 크게 모자랄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에 차질 없이 재원을 투입하려면 올해 초 '공약가계부'에서 정한 것보다 더 강도 높은 지출구조 조정이 필요한 데,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시한이 임박한 상황에서 가능한 세출 절감 방안은 사실상 '임금 동결'카드 뿐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국세 수입상황은 사상 최악이다. 상반기 국세 수입이 당초 예상보다 10조원이나 부족해 하반기에 아무리 호전되더라도 연말 국세는 지난해(203조원) 수준을 밑도는 200조원 내외에 머물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는 국세 수입이 사상 최초로 삼성전자 매출액(220조원 예상)보다 밑돌게 되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특정 연도의 부가가치세와 법인세, 종합소득세 수입 중 절반은 전년도 경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내년에도 세수 상황이 크게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내년 경기가 호전돼 2014년 국세 수입이 올해보다 10% 이상 증가해 220조원을 넘어선다고 해도, 현재 지출 구조가 유지된다면 재원 부족 사태를 막을 수 없다. 올해 초 예산 당국은 내년 성장률이 4% 수준까지 올라온다는 전제 아래 세입 확충(7조9,000억원)과 세출 조정(9조5,000억원)을 통해 17조4,000억원을 확보하는 내용의 계획을 세웠으나,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업무추진비와 여비, 행사비 등 공공부문에서 아낀 재원으로 경제활력 회복을 뒷받침하는 투자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쩨쩨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지만 기초자치단체가 추진 중인 각종 국제행사 유치를 막아서라도 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상황이 절박하다 보니 청와대와 기재부 실무진 간의 갈등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예산안 규모와 편성 방향 발표를 불과 열흘 남겨둔 상황에서 "경기 회복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예산을 짜라"는 청와대와 "과감한 세출 조정으로 재정적자 폭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기재부 실무진 등의 대립으로 아직까지 최종안을 확정 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지난달 말 기재부 예산실이 '2014년 예산안 초안'을 보고했으나, '너무 긴축적'이라는 이유로 반려된 이후 내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산실이 이처럼 완강한 이유는 무엇보다 올해 초 겪은 '추경 트라우마'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말 균형재정' 약속을 담아 내려고, 지나치게 낙관적 전망을 토대로 예산안을 짰다가, 정권 교체 직후 '17조원 추경'을 편성한 것에 대해 예산실은 수모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내년 경제성장률을 4%로 가정해 또 다시 낙관적인 예산을 편성하라는 청와대 지시를 또 다시 따르면, 같은 수모를 2년 연속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청와대 요구를 걸러주지 못하는 현 부총리에 대한 불만까지 제기할 정도"라고 예산실 분위기를 전했다.
예산실 관계자는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려면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많다"고 털어 놨다. 기재부 고위 관계자도 "2014년과 2015년에도 재정 적자를 용인한다면, 박 대통령 임기 말에는 국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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