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 고교 교과서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조차 오류가 많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보수 진영에서 이를 이념 논쟁으로 몰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서술이 식민사관에 기초했다거나 이승만ㆍ박정희 띄우기라는 지적이 거듭 나오고 새누리당에서조차 이 교과서를 비판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부정하는 정치 세력들의 "표적 공격"이라고 비판한다. 심지어 "문화 헤게모니를 장악해 사회주의 혁명을 하려는 좌파의 전략"이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에서 가장 많은 오류가 지적된 일제강점기 부분을 집필한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강연에서 현재 논란이 되는 교과서 내용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뒤 "학계를 비롯해 교육 언론 예술 출판 최근에는 연예계에도 좌파가 과반수를 차지한다"며 "이들은 문화 헤게모니를 장악해 대한민국을 사회주의 체제로 바꾸려 하고 있으며 그 기초가 역사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좌시할 수 없다고 나선 것이 '뉴라이트'이며 이중 역사 문제에 집중한 게 (자신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던)'교과서포럼'"이라고 말했다. 사실관계 자체가 오류투성이라는 지적을 좌파의 사회주의혁명 전략으로 바꿔치기 하는 논리다.
정원식 전 총리, 권이혁 김숙희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보수 학자모임인 '역사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특정 교과서에 대해 이른바 진보 성향의 언론과 학자들이 일제히 비판의 포문을 열었다"며 비판의 이유가 "필자들의 역사관이 지난 10여년간 우리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의 독점해 온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인호 교수는 "학자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역사라는 이름을 오용하는 사람들이 집중포화에 앞장서고 있다"며 "그런 것을 보면서 국민이 오도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보수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성명을 내 "최종 검정을 통과한 특정 교과서의 부분적 오류를 문제 삼아 교육을 정치 도구화하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며 "사관과 정치 이념에 따라 교과서 자체를 심판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학사 교과서를 분석한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이런 식의 이분법적인 '매도'를 예상한 듯 전날 이 교과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설명회에서 "이번 사안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거나 좌우의 대결이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 역사 정의와 가치관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 교수는 "우리 사회의 상식적인 가치관 추구와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소수의 비정상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이 자기들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고 다수를 공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희 교수의 강연이 끝난 뒤 새누리당 의원들 가운데서도 교학사 교과서와 필자로 참여한 '뉴라이트' 학자들의 인식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유수택(전남 영암) 최고위원은 "교학사 교과서가 5ㆍ18민주화운동의 정신적 배경을 전혀 기술하지 않고 시민들 소요 사태와 군인들 진압으로만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교학사나 저자들을)찾아 가려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김을동 의원은 "대한민국의 건국은 임시정부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헌법에도 나와 있는데 뉴라이트는 대한민국 건국을 이승만 대통령이 했다는 주장을 편다고 민족단체들이 울분을 토로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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