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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사태 '각본없는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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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사태 '각본없는 드라마처럼'

입력
2013.09.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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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의 우연이 역사를 바꾸었다."

화학무기 사용 책임을 둘러싼 시리아 사태가 군사개입에서 협상국면으로 전환되며 나오는 평가다. 우연의 시작은 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기자회견이다. CBS방송 여기자가 "시리아가 군사공격을 피할 방법은 없는가"라고 묻자 그는 원고에 없는 즉흥 답변을 이어갔다. "모든 화학무기를 내주까지 국제사회에 즉시 넘기면 된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그러지 않을 거다." 그 스스로 답변에 무게를 두지 않은 것은 '애드리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마저 관심을 두지 않은 이 발언을 멀리서 주시한 이가 있었다.

두 번째 우연의 주인공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미국의 군사개입을 막을 명분을 찾던 그에게 케리의 즉흥 발언은 좋은 핑계였다. 마침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도 그의 뜻에 따랐다.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를 국제사회 통제로 이관해 폐기하자는 러시아의 중재안이 마련된 것은 케리 발언 불과 서너 시간 뒤였다. 라브로프는 아직 대서양 상공의 전용기에 있을 케리에게 전화를 걸어 그의 제안을 수용한 중재안을 발표하겠다고 통보했다. 케리는 공식 제안이 아니었다고 발을 뺐지만 자신의 발언으로 포장된 중재안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이 케리 발언은 "있을 법하지 않은 일(화학무기 포기)에 대한 수사적 언급"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었다. 라브로프가 발표한 중재안에 유엔 중국 이란은 물론 영국 독일 프랑스까지 반색을 했다. 상황을 되돌리기 어렵게 되자 미국 언론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부주의로 시리아 정권에 잠재적 탈출구를 제공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이날 6개 방송과 연쇄 인터뷰를 한 그는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에 당황한 듯 먼저 인터뷰한 NBC방송에게 "러시아의 제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중에 CNN에게는 "(사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중재안을 긍정 평가했다. 그로선 의회에 요청한 군사개입 결의안이 상원과 하원에서 통과가 어려워 정치적 패배를 눈앞에 둔 마당에 중재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오바마는 10일 밤 대국민연설에서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유보를 공식 선언하고, 의회에 결의안 표결 연기를 요청했다. 뉴욕타임스는 "우연히 마련된 중재안이 오바마의 출구전략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뜻밖의 요소들이 뒤섞이면서 케리의 즉흥 답변이 생명력을 얻어, 시리아 사태의 국면을 바꿔놓은 셈이다.

모든 걸 우연으로 보기에 미심쩍은 장면들이 없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케리의 발언 이후 라브로프가 중재안을 발표하기까지 몇 시간 걸리지 않은 것은 사전 교감의 결과라는 얘기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오바마 정부가 의회의 군사개입 결의안 승인을 위해 전방위 로비를 하던 시점에 그런 일을 벌였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구심이 들 수는 있지만 현재까지 시리아 사태를 바꾼 것은 '우연'이라는 것이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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