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경기침체 여파로 잔뜩 움츠러들었던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계 자금의 대거 유입으로 때아닌 봄날을 만끽하고 있다. 취업자 수를 비롯한 일부 경제지표도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경제가 바닥을 찍고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11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지수는 9.79포인트(0.49%) 오른 2,003.85로 거래를 마쳤다. 종가 기준 2,000선 돌파는 5월 31일(2,001.05)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코스피는 6월 25일 1780.63을 기록한 이후 두 달 반동안 12.6%가 상승하며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
원동력은 단연 외국계 자금이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달 23일 이후 14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하며, 총 5조2,276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8월 13일 이후 누적 순매수는 6조원에 달한다. 6월 코스피 급락 당시 자금 이탈 규모가 5조9,000억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변심'이라 할 만하다.
외국인 자금의 유입으로 원화 가치도 덩달아 상승세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2.4원 오른 1,086.5원에 거래를 마쳤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출구전략 언급 여파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던 6월 24일 고점(1,163.50원)에 비해 원화가치가 6.5% 상승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원인이 국내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세계경제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G2)에서 각각 고용지표와 수출지표 등이 개선된데다, 미국의 급격한 양적완화 축소 우려가 완화되고 시리아의 지정학적 불안도 줄어드는 등 호재가 잇따랐다는 것이다.
한국 시장만의 매력이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수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은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이 위기를 겪으며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기초체력이 튼튼한 한국 시장을 차별화해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가운데 원화가 홀로 강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때마침 경기 지표도 긍정적인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이 이날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는 2,529만1,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43만2,000명 증가, 작년 9월(68만5,000명) 이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 폭을 기록했다. 기획재정부도 전날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주요 지표가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다"며 낙관적인 시각을 내비쳤다. 오승훈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자금은 국내 경기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에 기초해 베팅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불과 몇 주 전까지 '9월 위기설'이 나돌았던 만큼 몇 가지 지표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민상일 흥국증권 리서치센터장은 "6월 증시 하락 국면에서 이탈했던 외국인 자금은 거의 다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며 "원화 강세가 지속되고 있어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날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경기 회복세 지연으로 세수 부진이 지속되고 세외수입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말 것을 당부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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