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부터 신문배달로 생활비를 벌어야 할 만큼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황선진(45)씨는 갖은 고생 끝에 1990년대 중반 서울 송파구 잠실에 평생 꿈이던 세탁소를 냈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 외환위기의 광풍 속에 속절없이 세탁소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빚을 내 차린 삼겹살 가게도 망하고, 카드 빚과 사채 빚까지 쌓이면서 매일 채권추심 업자한테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2006년 파산면책 선고를 받은 후 재기를 꿈꾸며 황씨는 일본에서 접시닦이를, 아내는 한국에서 어린이집 보조교사를 했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 이듬해 지인으로부터 세탁소를 보증금에 대한 이자를 내는 조건으로 넘겨받게 됐지만 하루 매출 2만원을 못 넘길 만큼 장사가 안 되는 곳이었다. 자정이건 새벽이건 고객이 호출하면 찾아가는 부지런함을 앞세워 수입은 조금씩 늘었지만, 버는 족족 월세(100만원)와 이자(40만원)에 들어가 손에 쥐는 돈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던 중 황씨는 하나금융에서 유일하게 신용불량자들에게도 돈을 빌려준다는 얘기를 들었고 심사 끝에 2,000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다. 황씨는 "이 돈으로 임대보증금을 내고 계약서를 새로 쓰고 사업자등록증도 만들어 진짜 내 가게를 운영하게 됐다"며 "이후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과 모여 살게 됐고 지금은 경북 구미시에 노후를 위한 다가구 주택도 마련했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강화를 정책 기조로 삼은 박근혜 정부에 발맞추기 위해 금융권에서 저신용자ㆍ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상품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신용불량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용도 담보도 없는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려면 십중팔구 떼일 각오를 해야 한다"는 금융회사들의 인식 탓이다.
하지만 하나금융은 국내 제도권 금융회사 중에는 유일하게 2008년부터 신용불량자들도 은행 문지방을 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사업을 벌이다 실패해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어야 하며,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아 실패하지 않은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이 훨씬 재기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판단해 신용불량자라도 사업을 경험해 본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출을 해주기로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당시의 판단이 옳았다는 게 하나금융의 평가다.
10일 하나금융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신용불량자가 이용 가능한 희망기금의 자립 성공률은 68.6%에 이른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3개월간 연체 없이 원리금을 잘 내면, 납입이자의 50%를 다시 돌려주는 제도가 있는데 2008년 8월 재단 설립 후 올해 6월 말까지 대출자 322명 중 221명이 혜택을 보고 있어 자립 성공률이 절반을 넘는다"고 말했다.
희망기금은 신용불량자를 포함해 금융소외계층에게 창업ㆍ운영자금을 최대 5,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사업으로 대출금리도 연3.0%로 낮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창 힘들던 2008년 신용불량자를 대상으로 한 희망대출의 등장은 그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다. 당시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목적의 재단을 설립해 서민금융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신용불량자는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2008년부터 지금껏 희망기금에 투입한 돈이 200억원인데, 하나금융은 이 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금융지원에서 소외된 대상들을 믿고 대출해주니 자립 성공률이 절반을 넘더라"라며 "하나금융이 올해 추가 출연한 200억원의 대부분도 희망기금에 투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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