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시리아가 러시아가 제안한 '시리아 화학무기 포기' 중재안을 잠정 수용할 뜻을 밝혔다. 군사개입을 향해 치닫던 시리아 사태가 급속히 협상 국면으로 바뀌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CNN 등 6개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사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고, 시리아는 군사 공격을 모면할 수 있다"며 중재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는 국제사회와 미국 정치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군사개입을 강행하겠다던 기존 입장에서 물러난 것이다. 왈리드 무알렘 시리아 외무장관도 "러시아의 제안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앞서 시리아가 화학무기의 통제권한을 국제사회로 넘겨 파기하도록 하고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가입하는 협상안을 제안했다. 유엔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국제사회가 중재안을 지지하자 미국 상원은 11일로 예정된 제한적 군사 개입 결의안 투표를 연기했다. 미국의 군사개입에 반대했던 중국과 이란 등도 러시아 제안을 환영했다.
시리아 사태가 이처럼 반전된 것은 관련국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측면이 크다. 미 오바마 행정부로선 군사개입 결의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경우 정치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우군인 서방국에서도 군사개입에 대한 회의적 기류가 팽배했을 정도로 국제사회의 여론이 좋지 않았다. 군사조치 외에 퇴로가 없었던 미국 입장에선 러시아가 '출구전략'을 만들어 준 셈이다.
미국의 군사개입에 불안감이 높았던 알 아사드 정권에게도 중재안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매력적인 카드였을 것이다. 군사개입을 반대하며 서방과 대립각을 세웠던 러시아도 시리아를 일방적으로 두둔하던 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 크렘린궁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리아 화학무기에 대한 국제통제 방안을 처음 논의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공보실장은 현지 인테르팍스 통신에 "이 문제가 G20 정상회의에서 논의됐다"고 확인했지만 누가 먼저 이 같은 제안을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재안이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우선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일종의 자위수단으로 사용해온 만큼 진정성 있는 행동에 나설지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화학무기의 존재가 반군의 공격을 억제하는 심리적 효과를 가져왔기에 이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0일 "러시아가 시리아를 설득한다면 시리아는 당분간 미국의 군사 위협을 피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국제사회의 간섭을 받는 국제적 의무를 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실제 협상이 진행돼도 화학무기 포기까지는 상당한 시일과 진통이 불가피하다. 이번 중재안이 미국의 군사개입을 지연시키려는 기만책이라는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칼 레빈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시리아 정부에 너무 높은 희망을 가지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시리아의 CWC 가입에만 약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되며, 가입한 뒤에는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서 보낸 검시관에게 화학무기 비축량 확인과 무기 봉인을 허가해야 한다. 가디언은 "알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가 대부분 군 부대에 보관돼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화학무기 파기를 위해선 주변에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하지만 알 아사드 정권은 군 부대 반경 10㎞ 내의 어떤 활동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시리아에 유엔의 화학무기 감독지대 설치를 제안했다.
한편 이스라엘 국제 대테러연구소(ICT)는 10일 공식 웹페이지에 공개한 '시리아의 화학무기-테러리즘 위협'이란 보고서에서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1,000톤 가량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신정훈기자 h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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