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검찰이 발표한 원전비리 중간수사 결과는 원전부품 납품과정에서의 검은 거래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자행돼 왔는가를 새삼 확인하게 해 주었다. 원전설비업체는 부품 입찰과 불량부품 납품과정에서 검증업체와 승인기관, 수주업체인 한국수력원자력 간부들에게 뇌물을 뿌렸고, 여기에 정치브로커들까지 개입해 정부부처 수뇌부에 돈을 상납했다.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비리가 횡행했던 것은 관련 부처와 한수원, 설비업체들 간의 유착과 담합이라는 먹이사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고리 1ㆍ2호기와 신월성 1호기 등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원전이 이런 불량부품 때문에 가동을 멈췄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검찰은 시험성적표 등 품질보증서류 관련 비리, 부품 납품 및 계약관련 비리, 인사 청탁 비리 등으로 모두 97명을 기소했다. 불구속 기소된 박영준(53) 전 지식경제부 차관은 2010년 3월 원전설비 수주 등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여당 고위 당직자 출신 브로커 이윤영(51)씨로부터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종신(67) 전 한수원 사장으로부터 원전 관련 정책에 한수원의 입장을 반영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두 차례 700만원을 받았다. 김 전 사장은 2009년 원전 수처리업체인 한국정수공업 대표에게서 2,500만원을 받고 2011년 계약 체결 및 편의 제공 등의 명목으로 1억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밖에 이종찬 한국전력 부사장 등 원전관련 기관의 전ㆍ현직 임직원도 22명이 무더기 기소됐다.
이번 수사를 통해 원전설비 수주 비리의 상당부분이 밝혀졌지만, 뇌물과 인사청탁으로 얼룩진 원전 먹이사슬 구조가 온전히 드러났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남는다. 박 전 차관과 함께 비리 의혹을 받았던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이상득 전 의원이 이번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 예다. 또 설비업체들이 불량부품 납품으로 수백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했음에도 이들의 상납고리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것도 그렇다. 검찰은 "대한민국에 원전비리가 없도록 하겠다"고 한 다짐처럼 앞으로 남은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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