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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관상'

입력
2013.09.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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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약한 형이 죽자 야심에 찬 동생이 어린 조카의 왕위를 호시탐탐 노린다. 결국 동생은 어린 왕을 지키려는 원로 대신들을 쓰러트리고 왕좌에 오른다. 귀양 간 조카는 사약을 받고 짧은 삶을 마감한다. 문종, 수양대군, 단종, 김종서 등이 등장하는 이 사건을 역사는 계유정난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르고 닳도록 TV 전파를 탄 사극 소재이기도 하다. 수양대군의 딸과 김종서의 아들이 사랑을 나눈다는 파격적인 가상으로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드라마 '공주의 남자'도 있었다.

추석을 겨냥한 사극 영화 '관상'은 이 사건이 소재다. 역사 속 인물들이 실명으로 등장하고 실록이 묘사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새로울 게 없어 보이지만, 꽤나 긴박감이 넘치고 찰진 재미가 있다. 누구나 아는 내용인데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만으로 이 영화의 흥행 기상도는 파랗다.

익숙한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관상이다. 사람의 얼굴을 척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까지 읽어내는 타고난 관상가 내경(송강호)이 권력 암투에 휘말린다는 설정은 이미 알려진 역사적 사실 뒤에 물음표를 붙이게 만든다. 들끓는 야심에 몸이 단 이리 상의 수양대군(이정재)은 호랑이 상의 김종서(백윤식)를 어떻게 굴복시켰는가, 관상이 역사의 풍향계를 바꿔 놓은 것인가, 내경과 그의 아들 진형(이종석)은 피비린내 가득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과연 헤쳐나올 수 있을 것인가, 수양대군 뒤에 숨어 모략을 일삼는 인물의 관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일까 등등의 의문이 극적 재미를 직조해낸다.

양념도 만만치 않다. 내경의 매제 팽헌(조정석)이 자발없는 행동으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사극에 첫 도전한 송강호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강약과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며 희비극을 빚어낸다. 142분 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는 한재림('연애의 목적' '우아한 세계') 감독의 뚝심 있는 연출도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임에도 지나치게 설명조로 일관하는 후반부가 이 영화의 약점이라면 약점이다.

내경을 역사의 한복판으로 끌어낸 기생 연홍(김혜수)은 "사주 위에 관상이고 관상 위에 눈치"라고 말하곤 한다. 제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있고 정해진 운명이 있다 해도 권력의 무자비함 앞에선 무용하다고 영화는 말하려는 듯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들 만한 의문들. 내경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관상을 본 적이 없었을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김종서 편에 섰던 것일까. 영화는 답하지 않는다. 다만 내경은 이렇게 말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를 봤을 뿐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네."

11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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