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공연예술제'빅토르 혹은… '자막 없이도 이해할 佛잔혹극'왓더바디 더즈낫…' 유럽 현대무용의 정수
서울세계무용축제美 컴플렉션스 컨템포러리 발레단 공연 기대에디 말렘 무용단, 힙합을 예술적으로 접근
10월의 서울은 국제적인 공연예술의 도시다. 공연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제13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ㆍ10월 2~26일)와 제16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ㆍ10월 7~27일)가 도시 곳곳에서 펼쳐진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7개국 19개의 작품을, 서울세계무용축제는 16개국 51개 단체의 작품을 선보인다. 매년 가을을 화려하게 수놓는 대표적인 두 축제의 예술감독과 프로듀서들에게 올해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들을 물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www.spaf.or.kr
임수연 SPAF 연극 프로듀서의 추천작
국내에 알려진 프랑스 연극은 대체로 고전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로 이른바 현대연극이라 할 작품은 보기 힘들었다. 올해 개막작으로 소개되는 프랑스 연극 '빅토르 혹은 권좌의 아이들'(로제 비트라크 원작)은 세상의 부조리 속에서 인간이 방황하는 모습을 담은 대표적인 현대 잔혹극이다. 심오한 작품이지만 무너지는 가정의 모습을 뛰어난 비주얼 장치로 보여줘 미장센만으로도 자막 없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무대엔 무게 80kg에 달하는 나무뿌리 세 덩어리와 높이 9m가 넘는 나무둥치가 놓이는데 음산한 인간사를 대변하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20세기 초반 프랑스 가정을 상징하는 40kg짜리 샹들리에도 무대 천장에 매달린다.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미국 작가 수전 손택의 삶을 다룬 미국 극단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의 '손택:다시 태어나다'는 미국 현대연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을 만든 빌더스 어소시에이션을 놓고 "이들의 등장으로 모든 현대극은 구석기 작품이 됐다"고 평했다. 1인극이지만 영상 테크닉을 통해 늙은 손탁과 20대 손탁이 대화하는 장면을 구현한다. 유럽에 비해 미국의 현대연극은 많이 뒤져 있지만 기술적인 면에선 매우 진보해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오선명 SPAF 무용 프로듀서의 추천작
폐막작인 벨기에 무용단 울티마 베츠의 '왓더바디 더즈낫 리멤버(What the body does not remember)'는 유럽 현대무용사에 큰 획을 그은 빔 반데키부스의 데뷔 작품으로 꼭 봐야 할 작품 1순위로 꼽는다. 울티마 베츠는 90년대 이후 이른바 개념무용에 빠져있던 세계 무용계에 '몸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춤 자체의 중요성을 설파한 무용단이다. 일단 볼거리가 뛰어난 작품으로 9명의 무용수가 벽돌을 머리 위로 던져 간신히 피하는 등 굉장히 역동적인 춤을 선보여 긴장감을 끌고 간다. 공연 내내 흥분 상태가 유지된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이 만든 '스푸마토'는 대홍수 등 자연재해로 난민이 된 베트남인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기후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 무대를 전부 방수 처리하고 1,000리터 크기의 물탱크와 펌프를 준비했다. 무용뿐 아니라 기후 난민들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전달하는 등 다큐멘터리의 특성도 담고 있어 권할 만하다.
프랑스 예술가 피아 메나르의 복합극 '푄의 오후'는 비닐, 우산 등 일상의 오브제에 선풍기 30대가 만들어내는 바람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독특한 구조의 극이다. 관객이 되도록 가까이서 퍼포먼스를 볼 수 있도록 하려고 대극장 객석을 포기하고 무대에 원형으로 170석을 만들었다. 만 4세 이상이면 입장할 수 있다.
◆서울세계무용축제 www.sidance.org
이종호 SIDANCE 예술감독의 추천작
단 한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면 '목성의 달빛' '회상' '상승'의 세 작품을 엮은 미국 컴플렉션스 컨템포러리 발레단의 공연을 꼽겠다. 플렉션스 컨템포러리는 현대무용의 새 지평을 연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에 비견되는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무용 단체다. 2005년 첫 내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정신적ㆍ철학적인 면이 부각되는 유럽의 현대무용과 비교해 역동적인 움직임이 돋보인다. 특히 '회상'은 부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한국인 안무가 주재만이 고국에서 세계 초연으로 올리는 작품. 1998년 축제 창설 이후 유럽의 세계적인 안무가와 무용단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집중해 온 SIDANCE가 미국으로 눈을 돌리며 균형을 추구한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알제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안무가 에디 말렘과 흑인 무용수로만 이뤄진 에디 말렘 무용단의 '강력한 왕국에 대한 예찬'은 힙합을 예술적으로 접근한 작품이다. 흑인의 춤인 크럼프 댄스에 현대무용을 입혔다. 1992년 미 로스앤젤레스 인종 폭동 당시 젊은이들의 분노와 증오의 표출로 탄생한 크럼?댄스는 과격하고 공격적으로 보이는 게 특징이다. 지난 4월에 초연된 작품이다.
잉군 비외른스고르 프로젝트의 '바다에서 온 여인'은 고도의 문학성을 춤으로 빚어낸 작품이다. 노르웨이의 위대한 극작가 헨릭 입센과 노르웨이 무용계를 대표하는 안무가 잉군 비외른스고르의 만남. 여기에 현대음악가 쇤베르크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소품'까지. 이 묘한 조합이 기대를 모은다. 입센의 '바다에서 온 여인'은 연극계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작품으로 지난 2000년 로버트 윌슨 연출의 서울연극제 개막작으로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핀란드 아우라코 댄스 시어터의 '메-메'는 36개월 이하 아기들이 보호자와 같이 무대에 올라 무용수와 함께하는 참여 공연이다. 그간 소개됐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무용에서 대상을 더욱 확장한 실험적인 작품이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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