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뽑는 신입사원을 더 이상 채용할 수 없다는 사실이 착잡합니다. 회사가 없어지는 설움이 이런 건가 봐요."
올해 1월 정책금융공사에 입사한 A씨는 9일 사무실 바로 이웃에 위치한 KDB산업은행 본점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치열한 입사경쟁을 뚫고, 주변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사한 정금공이 정부 계획대로라면 내년 7월 분리 4년 만에 산업은행과 다시 합쳐지면서 간판을 내리게 된다. 산업은행은 이날 정금공과 통합작업을 진행할 태크스포스(TF)팀을 출범시켰다.
지금 A씨에게 가장 당혹스러운 것은 정부가 내놓은 정책금융 개편 논리가 전혀 수긍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정부는 산은 민영화를 위해 정금공을 분리하던 4년 전과 시장 상황이 크게 변해 산은 민영화를 철회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정금공과 다시 합치겠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시장 상황이 좋아질 경우 다시 산은 민영화를 추진할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정부는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하면서는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는데, 그 조직개편에서는 왜 효율성 원칙이 뒷전으로 밀려났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금융공기업인 산은을 비롯한 한국은행 금감원 등은 현재 신입사원 선발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A씨는 "같은 해 입사한 다른 금융공기업 직원들은 곧 후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부러움이 생기다가도 '그 기업은 언제까지 유지될까' '신입사원을 뽑아 놓고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든다"며 "금융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친구, 후배들이 어디가 좋으냐고 물을 때면 뭐라 들려줄 말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현재 모든 부서에서 장기 프로젝트는 중단됐습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미래가 불투명해 혼란스러워 하고요. 산은과의 통합 과정에서 물리적, 화합적 융화가 잘 될지 걱정스럽습니다.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가 원망스럽습니다."
혼란을 느끼는 건 젊은 사원들뿐만이 아니다. 한 정금공 직원은 "동료 중 대화 도중 순간순간 울컥하는 사람이 많다"며 "집단적으로 조울증에 걸린 듯 하다"고 털어놓았다.
정금공 직원들의 이런 불안한 상태는 12월 정기국회에서 산은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당에서 조차 정부의 정책금융 개편안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 정부의 계획대로 통합이 진행될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장이 얼마전 "정부안대로 일방적으로 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최근 강한 반대 의사를 나타낸 데 이어, 박민식 정무위 여당 간사 등도 정부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다.
여당도 설득하지 못한 정부의 일방적 정책금융 개편안이 얼마나 오래 표류할지 현재로선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기간 정책금융공사가 맡아오던 중소기업 지원업무 등은 차질을 피할 수 없으며, 그 피해는 모두 국민들의 몫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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