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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9월 10일] 비서실장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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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9월 10일] 비서실장을 생각해본다

입력
2013.09.09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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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이유는 오늘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검증을 거쳐 시대에 관계없이 의미가 있는 말과 글로 살아남은 게 고전 아닌가. 가면극을 예로 들면 연희자들은 옛 탈을 쓰고 놀지만 정작 그들이 벗기는 것은 오늘의 가면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고전 에서도 그런 명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인용하고 싶은 것은 '議事者 身在事外(의사자 신재사외) 宜悉利害之情(의실이해지정) 任事者(임사자) 身居事中(신거사중) 當忘利害之慮(당망이해지려)'라는 말이다. 일을 의논하는 사람은 마땅히 몸을 일 밖에 두어 이해의 실정을 두루 살펴야 한다. 그러나 일을 맡으면 몸을 일 안에 두어 이해를 잊고 일해야 한다.

의사자는 참모, 임사자는 결정자다. 공직 중에서 의사자이면서 동시에 임사자인 자리로는 대통령 비서실장 만한 게 없을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해 청와대를 잘 이끌어 가면서 그 자신이 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일을 잘 결정해야 하는 게 비서실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휴가를 단축하고 청와대로 돌아와 비서실장을 교체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갑작스러운 경질의 배경이 여전히 궁금하지만, 허태열 전 실장에서 김기춘 실장으로, 부산고 출신에서 경남고 출신으로 비서실장이 바뀐 뒤 무엇이 달라졌나?

좋든 싫든 대통령 비서실장은 모든 일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위치다. 그런데 김 실장의 취임 이후 정국은 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였고, 통일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수사와 국정원 개혁과 같은 현안이 얽히고설켜 공안정국이 조성됐다는 말을 듣게 됐다.

검찰총장은 물론 법무부장관이나 국무총리가 다 그의 법조 후배인 '왕실장'은 예상대로 내각과 청와대를 다잡고 공직기강을 조이는 데는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에 대해 "국정 운영에서 우리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지만, 중추기관은 이제 아무런 문제없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일까.

김 실장의 취임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공안검사 출신의 정국 운영방식과 공직 인사의 변화다. 특히 이 중에서도 안타까운 것은 공직 인사를 둘러싸고 무성해진 퇴진 압력, 잡음과 뒷소문이다. 지난해 대선 때 후보들은 공직을 전리품화하지 않겠으며 임기직 고위 공직자들의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볼 때 공직의 전리품화를 근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 정부에서도 그 약속은 역시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그 중심에 비서실장이 있다.

김 실장을 기용한 데 대해서는 처음부터 말이 많았다. 초원복국집 사건으로 드러난 지방색과 개인 영달 추구의 모습, 제3공화국 이후 공안검사로서의 활동 등을 감안할 때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인물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남이가?" "장관 자리가 얼매나 좋은지 아노?" 이런 천박한 말을 했던 사람이다.

가뜩이나 여의도는 없고 청와대만 있고, 장관은 없고 대통령만 있다는 말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이 김기춘 씨를 기용한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위에서 인용한 채근담의 말에 비추어 부족한 인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김종훈이라는 기업인을 이 정부의 핵심 조직인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임명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인사 문제에서 연고가 적고 국제적 감각과 업무능력을 갖췄다는 점에서 차라리 그런 사람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구나 비서실장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누구든 나이에 관계없이 퇴영적인 게 아니라 진취적인 인물, 식치(識治)의 리더십을 어느 정도 갖춘 인물을 기용해야 한다. 김기춘 비서실장 체제의 한 달을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더욱 든다. 비서실장 인선을 다시 하는 게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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