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속 차별 시중은행 외주 콜센터 상담원들
국내 A은행의 콜센터 상담원 임은정(가명·37)씨는 이 은행의 빌딩 4층에서 하루에 160여명의 은행 고객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빌딩 5층과 6층에도 임씨와 같은 일을 하는 상담원이 180명이 있다. 하지만 임씨와 5층 상담원의 처우는 크게 다르다. 임씨의 한 달 월급은 150만원. 팀장으로 승진해서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일반 사원일 때는 기본급 108만원에 성과급과 근속수당을 합쳐, 많이 받아야 월 128만원 정도였다. 반면 5층에서 일하는 콜센터 상담원은 신규 고객 유치 1건당 5만원의 수당 등을 포함, 임씨보다 대략 1,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더 받는다. 5층 상담원들은 임씨와 달리 은행 유니폼을 입는다. 같은 일을 하고도 이런 차별을 받는 것은 5층 콜센터 상담원은 은행이 직접 고용한 직원인 반면 임씨는 외주업체 소속이기 때문이다.
같은 일 해도 연봉 1,000만원 적어
A은행 빌딩 4~6층에 있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모두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전화를 돌린다. 고객관리 차원에서 카드 신규 발급 고객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일명 ‘해피콜’과 카드 한도를 높이거나 카드 이용 실적이 미미하다면 다른 카드로 신규 발급하도록 유도하는 일이 주 업무다.
업무는 같지만 4,5,6층 상담원들이 속한 업체는 모두 다르다. 4층은 임씨가 속한 외주업체, 5층은 A은행, 6층은 또 다른 외주업체가 운영주체다. 은행은 4층과 6층 업체를 경쟁시켜 5개의 등급(S-A-B-C-D)으로 평가해 성과급, 재계약 여부에 반영한다. 자연히 매일매일이 전쟁과도 같고,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 아니다. 임씨는 하루에 통화 ‘시도’ 260건, 고객과 통화가 성사되는 ‘접촉’은 145건, 총 ‘통화 시간’은 3시간 40분을 목표로 한다. 임씨 소속 업체가 이번 달 평가에서 최소 A등급을 받기 위한 기준이다.
실적을 높여 평균 B등급은 받아야 재계약이 가능하고 최대 10만원 최소 2만원의 성과급도 받지만 신규로 고객을 유치해도 수당은 받지 못한다. 임씨는 “은행 소속 상담원은 고객이 카드를 신규 발급하면 1건당 5만원의 수당이 있다고 들었다”며 “나도 은행 소속으로 일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임씨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하는데 다들 하루 벌어 생계를 잇는데 급급하다 보니 조직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임씨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평균 1% 수준이다.
비정규직법 후 외주화 가속
은행 콜센터에 여러 고용 형태의 상담원이 혼재하기 시작한 건 2007년 비정규직 보호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비정규직법에 따라 기간제 계약직으로 일하던 은행 콜센터 상담원들이 은행이 직접 고용하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이 ‘5층 상담원들’이다.
하지만 이후 콜센터 업무가 크게 늘자 은행은 신규 고용 없이 업무를 외주화했다. 가끔씩 은행 소속 콜센터 상담원들의 자리가 비면 임시로 파견 인력을 썼다. 비용 절감은 물론 관리 책임에서 자유롭고 탄력적인 인력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보니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단지 고용 형태(무기계약직·파견·도급)에 따라 대우가 제각각인 노동자들이 생겨났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이 ‘콜센터 상담원 노동과정과 실태’ 보고서에서 분석한 국내 B은행 콜센터 역시 신규 카드 발급 업무를 은행 상담원만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업무 차이가 없는데도 파견업체 상담원에게 훨씬 적은 월급을 주었다. 하루 콜 건수는 은행 소속(150~160건)과 파견업체 소속(140~150건)이 비슷한 반면 월급은 은행 소속(230만~350만원)이 파견업체 소속(140만~160만원)에 비해 2배 정도 더 받았다. 사측 입장에서는 고용 유연성이나 업무 효율성을 위해서보다는 비용 절감을 위해 외주화를 악용하는 셈이다.
더욱이 외주업체 소속이면서도 실제 업무 관리는 원청 업체로부터 받는 ‘위장 도급’도 많다. 임씨의 경우도 평가 등을 통해 사실상 원청인 A은행의 관리를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법을 피해가기 위해 도급으로 위장했을 뿐 파견에 가까운 것이다. 파견법에 따르면 이런 경우는 불법파견에 해당돼 원청업체가 직접 고용할 의무가 생긴다.
무분별한 외주화에 따르는 비용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엔 도급 파견 등 간접고용이 급속히 늘고 있다. 콜센터만 해도 공공과 민간을 가리지 않고 외주화가 확대되고 있다. 2012년 콜센터 노동인권보장 공동캠페인 정책토론회 자료집에 따르면 전국 공공부문 콜센터 7,639개 중 84.3%가 외주업체가 운영한다.
하지만 이직이 잦고 숙련도가 쌓이지 않으면서 원청 입장에서도 외주화가 꼭 이득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A은행에서는 최근 외주업체 상담원이 전산 시험 중 고객 정보를 잘못 건드려 카드가 결제되는 ‘대형 사고’가 났다. 1년에 2~3번씩 생기는 이런 사고에 대해 임씨는 “외주업체라는 이유로 은행에서 제대로 교육은 안 하면서 실적만 압박한 결과”라고 말했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예전에는 청소, 경비 등 특정 업무에 한정돼 있던 외주화가 산업 전반에 걸쳐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규제를 통해 지나친 외주화에 제동을 걸 시점”이라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