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왕 들르곤 하는 우리 동네 작은 선술집은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워낙 좁아 혼자 가도 마치 서너 명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하는데, 그래서 본의 아니게 모르는 사람들의 내밀한 속마음까지도 듣게 되는 경우가 잦다. 그중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마치 한화 이글스 중간 계투진처럼 홀로 선술집에 등판하는 오십 대 중반의 짧은 스포츠머리 아저씨는, 소주만 들어갔다 하면 좌석 칸막이에 붙여 놓은 맥주 광고 포스터 속 여자 연예인을 향해 자신의 과거사와 맥락 없는 사랑고백을 늘어놓곤 했는데, 그래서 나는 그 아저씨가 고아로 불우하게 성장했고, 슬하에 자식 한 명 없으며, 십 년 전 아내와 이혼한 후, 지금은 공사 현장 일용 잡부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면서 테이블 위로 쓰러지는 날들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 동네 선술집에선 아무도 미간을 째푸리거나 술잔을 탁, 테이블 위로 소리나게 내려놓으면서 무언의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각자의 술잔을 기울일 뿐. 그러다 보면 주인아주머니가 세상 모든 달걀 요리들의 '싸다구'를 거침없이 날리고도 남을 만한 계란말이 안주를 서비스로 불쑥 내밀게 되는데, 스포츠머리 아저씨도 꾸역꾸역 그 계란말이를 먹으면서 울음을 그치곤 했다.
한데, 얼마 전 다시 그 작은 선술집을 찾아갔다가 주인아주머니로부터 뜻밖의 사실을 전해 듣게 되었다. 보름 전이던가, 스포츠머리 아저씨가 예의 또 테이블에 쓰러져 꺼이꺼이 울고 있을 때, 한 중년 여성이 선술집 안으로 들어섰다는 것, 알고 보니 그녀는 스포츠머리 아저씨의 아내였다는 것, 아저씨는 딸만 셋에다가 평생 손에 망치 한번 잡아본 적 없는 무직자라는 것, 생활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내가 전적으로 맡고 있다는 것. 스포츠머리 아저씨는 아내가 선술집으로 들어온 다음부턴 거의 차려 자세로 남은 술을 마시다가 거의 끌려가듯 집으로 갔다고 했다.
아니, 근데 그 아저씨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요? 나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조금 허탈한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이런 대답을 내놨다. 계란말이가 탐났겠지!
한국사가 다시 수능의 필수과목으로 지정될 거라고 한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은데, 그래서 좀 우려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의 1960,70년대, 그리고 80년대 역사 교육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우리 선배 세대들에겐 식민사관도 극복하고 경제 발전도 이뤄야 한다는 과제가 한꺼번에, 벼락처럼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갖게 만들려면, 그래서 그 동력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려면, 우리는 '백의민족'이요 '단일민족'이라고 계속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사정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선배들의 그런 노력 때문에 우리는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에게 '진선미'가 다 있다는 식의 교육보다는, 세계사적인 안목에서 우리와 타인과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해졌다. 하지만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들어가면 그런 교육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한국사'를 외국인이 서술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왜곡과 이런저런 이데올로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자기 이야기를 자기 스스로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일기에도 종종 거짓을 기록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다르게 보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것을 다시(분명 어느 부분만을 강조해서)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암기하게 만들려는 현상은, 뭐랄까, 그저 6,70년대 정서를 리바이벌로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저 계속 끝도 없이 계란말이만 탐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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