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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9월 10일] 이름의 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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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이야기/9월 10일] 이름의 규격

입력
2013.09.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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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았어요." 회식 중 동료 N이 쑥스럽게 근황을 전했다. 축하와 덕담과 건배가 이어졌다. "이름이 뭐에요?" 떠들썩한 분위기 끝에 누군가 묻자 N은 한숨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N 부부는 상의 끝에 부모 성을 모두 넣어 아이 이름을 짓기로 결정했단다. 이상적인 건 아빠의 성과 엄마의 성을 조합하여 '창씨'를 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차선책으로 그들은 성은 아빠 것을 따르고 이름의 첫 자에 엄마 성을 넣은 후, 외자로 된 한글 이름을 짓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한 글자의 아빠 성과 두 글자의 이름. 하지만 나란히 쓴 부모의 성은 한자이고 이름은 한글이니, 한자와 한글 사이에 경계가 생겨 N 부부의 생각을 담기에 큰 부족함이 없었다. 나름 흡족한 마음으로 동사무소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다음날 구청에서 전화가 왔단다. 고압적인 목소리가 이렇게 말했다. "한글로 하려면 한글로 하시고요, 한자로 하려면 한자로 하세요. 한글과 한자를 섞어서 이름을 지을 수는 없다구요!" N은 바로 구청에 달려가 사정도 해보고 법적으로 문제 있냐며 따지기도 했지만 직원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래서 결국 한글 이름으로 등록했어요. 아이에게 지어주려던 이름은 그게 아니었는데……" N은 못내 서운해 하며 말끝을 흐렸다. '고유'함을 가장 깊이 간직해야 할 사람의 이름마저 '규격'에 맞추어야 하는 현실이 축하의 뒤끝으로 씁쓸하게 지나가는 밤이었다.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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