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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동반 출전 "렛츠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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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동반 출전 "렛츠 고!"

입력
2013.09.0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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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경기 안풀리면 내게 짜증" "네가 편하니까 그랬지" 티격태격만약에 핸드볼 안 했더라면… 언니 "축구" 동생 "아동복지사"초중고~소속팀까지 같지만 국가대표 함께 된 적은 드물어"인천AG부터는 꼭 같이 뛰고파"

"이상하게 코트에 서면 동생이 눈에 잘 들어와요(김온아)."

"잘 보이는데 패스를 그렇게 주면 어떻게 해(김선화)."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핸드볼 자매 김온아(25)와 김선화(22ㆍ이상 인천시체육회)가 모처럼 함께 자리했다. 포지션이 센터백(CB)에 오른손 잡이인 김온아와 달리 동생은 라이트윙(RW)에 왼손잡이다. 여느 자매와 같이 인터뷰 내내 옥신각신 했지만 그 안에 서로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일상 이야기를 할 때면 짓궂게 농을 건넸지만 핸드볼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소속 팀을 넘어 대표 팀의 중심에 우뚝 서기 위해 궂은 땀을 흘리고 있는 자매를 지난 5일 여자 핸드볼 인천시체육회의 숙소가 위치한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서 만났다.

찰떡궁합 자매, 핸드볼은 내 운명

김온아-김선화는 유명한 핸드볼 집안 출신이다. 실업 선수 생활을 하다 은퇴한 첫째 김가나(27)까지 세 자매가 모두 핸드볼을 했다. 맏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처음 핸드볼을 접하게 된 자매는 시간이 흘러 한국 여자 핸드볼을 대표하는 선수들로 성장했다. 김선화는 "언니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핸드볼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던 것 같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때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고 웃었다.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둘은 이제는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서로에게 덕담을 해달라고 하자 어색한 듯 부끄러워했다.

김온아는 동생 선화에 대해 "슈팅만 봐도 전보다는 확실히 기량이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이제는 패스를 해도 골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김선화는 "언니는 솔직히 흠잡을 때가 없었다. 재활하고 난 뒤에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좀 더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덕담도 잠시 김선화는 "그래도 언니가 경기가 잘 안 풀리면 내게 짜증을 낸다"고 하소연을 했고, 언니는 "네가 편하니까 그랬지. 다른 선수들한테 짜증을 낼 수는 없잖아"라며 동생을 달랬다.

김온아는 동생에게 엄한 언니다. "동생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힘들다고 투덜댈 때가 있다"며 "잘 다독여줄 수도 있겠지만 언니로서 당연히 동생이 좀 더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싫은 소리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핸드볼 안 했다면 무엇을 했을까요?"

확실히 다른 성격만큼이나 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만약 핸드볼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했을 것 같느냐는 질문에 김선화는 한참을 고민했다. 평소 호기심이 많고 활동적인 김선화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아기들을 너무 예뻐해서 만약 핸드볼을 안 했다면 아동복지사 같은 일을 하고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온아가 순간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선화는 손재주도 좋고 다재다능 해서 무엇을 해도 잘 했을 것 같다"고 칭찬했다.

김온아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볼을 안 했어도 무슨 운동이라도 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장에서 남자 친구들과 같이 농구나 축구를 하면서 뛰어 노는 걸 좋아했다"며 "아마 여자 축구 선수가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만약 김온아가 핸드볼 선수가 되지 않았다면 지소연(22ㆍ고베 아이냑)과 같은 뛰어난 여자 축구 선수가 탄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반 태극 마크와 인연이 없었던 자매 "이젠 활짝 웃어야죠"

김선화는 가장 기억나는 순간에 대해 백제고 1학년 때 첫 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했던 때를 꼽았다. "그 동안 언니와 함께 뛰면서 우승을 참 많이 했었는데 유독 고등학교 시절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당시 3학년이었던 김온아는 일찌감치 청소년대표에 뽑혔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다.

둘은 초ㆍ중ㆍ고교를 함께 다니고 현재 소속 팀에서 같이 뛰었지만 유독 태극 마크에 대해서는 함께 한 기억이 많지 않다. 2011년 7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앞두고서야 처음으로 대표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이후 김선화는 지난해 런던올림픽 최종 엔트리에서 아쉽게 낙마했고 김온아는 런던올림픽 본선 1차전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김온아는 1년여의 피나는 재활 끝에 7월말 코트에 복귀했고 그 사이 김선화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013 서울컵 국제대회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김선화는 "주변에서 '이상하게 너네 자매는 함께 국가대표 복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속상했다"면서 "이제 힘들게 얻은 태극마크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온아는 아직까지 무릎이 100%는 아니다. 경기에는 출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전성기 때만큼 기량이 올라오지 않았다. 10대부터 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 등에 참가, 국내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로 꼽히는 김온아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럽다. "몸 상태만 좋다면 당연히 국가의 부름을 받아 대표팀에서 뛰고 싶은 게 사실이다"라며 "동생과 함께 내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그리고 더 나아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꼭 함께 코트를 누비고 싶다"고 웃었다.

자매의 환한 미소가 국가대표팀에서도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된다.

글ㆍ사진=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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