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들어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판이 바뀌었다. 교보생명이 고심 끝에 이 가을에 골라서 내건 글은 아동문학가 김영일(金英一ㆍ1914~1984)의 동시 ‘귀뚜라미 우는 밤’이다.
또로 또로 또로
책 속에 귀뚜라미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뚜라미 소리만 듣는다.
교보문고의 글판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다. 다만 제한된 공간에 글을 올리다 보니 때로는 원문을 축약하거나 짜깁기하는 일이 생긴다. 글판에 오른 글은 그래서 반드시 원문을 찾아 읽는 게 좋다. 김영일 시의 원문은 이렇다.
또로 또로 또로
귀뚜라미 우는 밤
가만히 책을 보면
책 속에 귀뚜라미 들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귀뚜라미 소리만 듣는다.
또로 또로 또로
멀리 멀리 동무가 생각난다.
중요한 것은 결국 귀뚜라미 소리 자체가 아니라 동무 생각인 것이다.
이보다 앞서 6~8월 석 달 동안 내걸렸던 글은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시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시였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이 시는 그의 시집 44번 작품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는 알까
그리고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왜 우리는 다만 헤어지기 위해 자라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썼을까?
내 어린 시절이 죽었을 때
왜 우리는 둘 다 죽지 않았을까?
만일 내 영혼이 떨어져 나간다면
왜 해골은 나를 쫓는 거지?
글판에 오른 1연이 가장 인상적이어서 그 아래 부분은 없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전문을 읽고 보면 나였던 그 아이는 이미 죽고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두 시를 읽으면서 안과 속에 대해 생각했다. 김영일의 ‘책 속’과 네루다의 ‘내 속’은 각자 시를 통해 말하고 싶은 중요한 것들이 들어 있는 공간이다.
그러면 안과 속은 뭐가 다르지? 어떤 때 ‘속’이라고 하고, 어떤 경우 ‘안’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 걸까? 사전을 찾아 읽어보면 그 의미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사전에 이르기를 ‘안’은 어떤 물체나 공간의 둘러싸인 가에서 가운데로 향한 쪽, 또는 그런 곳이나 부분을 뜻한다. ‘속’은 일정하게 둘러싸인 것의 안쪽으로 들어간 부분을 뜻한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더 헷갈린다.
예를 들어 ‘시냇물 안’이 맞느냐 ‘시냇물 속’이 맞느냐 할 때 위와 같은 뜻만을 고려한다면 ‘안’과 ‘속’을 모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물의 가운데’를 이르는 말로는 ‘물속’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시냇물 속, 도랑물 속, 찬물 속, 우물 속, 강물 속, 냇물 속, 흙탕물 속’과 같이 표현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좋다. 김영일의 ‘책 속’을 ‘책 안’이라고 하면 안 되나? 네루다의 시 ‘내 속’을 ‘내 안’이라고 번역하면 틀리는 건가? “내 안에 너 있다”라는 대사도 있던데. TV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이동건이라는 가수 겸 탤런트가 자기 가슴을 가리키며 김정은에게 한 말이다.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명대사인데, 이걸 “내 속에 너 있다.” 이렇게 바꿔 말하면 여자들이 싫어할까?
가수 조성모의 ‘가시나무’라는 노래는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이러던데? 이어 ‘내 속엔 헛된 바램(맞는 표기는 바람)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중략)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뭐 어쩌고 이러면서 계속 속을 태우던데? 이 경우는 분명 속을 태우는 거지 안을 태우는 건 아니겠지?
안과 속의 구분과 사용법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2회에 걸쳐 안과 속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한다. 결론이 날지 안 날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한 번에 다 말하지 않아서 속이 타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텐데, 왜 이 경우 안이 탄다고 하면 안 되는지 생각하며 기다려주시면 좋겠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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