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청계천 광통교. 영화감독 김조광수(48)씨와 영화배급사 레인보우팩토리 대표 김승환(29)씨의 국내 첫 공개 동성(同性) 결혼식 현장은 1,000여명의 하객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무대에 오물을 뿌리고 동성결혼 반대 피켓을 든 사람이 일부 있었지만 2시간여 동안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이날 결혼식은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두 신랑은 결혼식에서 트로트 가요 '몰래 한 사랑'을 개사해 자신들의 힘들었던 사랑과 현재의 굳은 결심을 토로했다. 이어 대학생 성소수자 대표들이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비록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부지만, 9년 만에 사랑의 결실을 얻어낸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축의금으로 성소수자 인권센터와 인권재단을 설립할 계획이다.
예식은 지나는 행인들도 참여해 거리축제처럼 치러졌다. 동성결혼을 바라보는 시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공개 결혼식이 "성소수자 권리 찾기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자원봉사 활동으로 신혼부부에게 힘을 보탠 대학생 박지아(21)씨는 "숨어 지내던 성소수자들이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얘기를 하면서 차별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날 결혼식은 그 차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의 장을 열어주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식장 주변에는 '전국기혼자협회' 명의로 "주여! 동성커플에게도 우리와 같은 지옥을 맛보게 하소서'란 재치 넘치는 플래카드가 붙기도 했다. 결혼 8년차 부부 진헌규(37), 권미란씨는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선 안 된다. 우리 결혼식 때도 이만큼 즐겁진 않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남편과 함께 식장을 찾은 트랜스젠더 방송인 하리수(38)씨도 "이 결혼식은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라며 "지금은 비록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들로 인해 많은 동성 커플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교환학생 니콜(20)씨는 "네덜란드에서도 10년 전쯤 동성커플의 공개 결혼이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당연한 일이라 공개적으로 하진 않는다"며 "한국도 성소수자에게 열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는 2001년 세계 최초로 동성결혼의 법적 권리를 인정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김모(53)씨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동성결혼에 반대하지만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더 양지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혼식을 지켜본 동성 커플들은 조심스럽게 희망을 얘기했다. 한 여성 커플은 "우리도 언젠가 당당히 결혼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김 감독 커플은 혼인신고가 반려되면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동성결혼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국내 법에는 동성결혼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지만, 구청과 법원에서는 민법상 '부부'란 표현 자체가 혼인이 이성간의 결합이란 사실을 전제한다고 보고 동성간 혼인신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재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는 네덜란드 프랑스 뉴질랜드 등 14개국이다. 미국에서는 뉴욕 매사추세츠 코네티컷 등 13개 주와 워싱턴DC에서 동성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한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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