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때문에 재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의결권까지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내 주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입김이 강해질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투자기금 중 주식의 비중을 2018년까지 20%로 높이겠다고 공언한 것에 이어, 최근 지분율이 10%를 넘을 경우 공시 의무 규정(10%룰)이 완화된 이후 국내 우량기업 주식을 활발하게 사들이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10%룰이 완화된 이후 주요 상장사 주식을 쓸어 담고 있다. 이미 만도, 한솔CSN, 이수페타시스의 지분율이 10%가 넘어서 6일 금융감독원에 보고했을 정도다.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의 경우 국민연금이 3일부터 사흘 동안 8만8,772주를 매집하면서 지분율이 10.60%가 됐다.
국민연금은 자본시장법이 시행된 2009년 2월 이후 상장사 지분율을 10% 미만으로 관리해왔다. 10%를 넘어설 경우 거래 내역을 5일 내 공시해야 하기에 투자전략 노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련 규정이 바뀌면서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는 투자종목의 지분율이 10%가 넘어선다고 해도 매매한 날의 다음 분기 첫째 달(4월, 7월, 10월, 1월) 10일까지만 공시하면 된다. 김철중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민연금은 올해 말까지 국내주식에 총 87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 앞으로도 6조5,000억원을 더 매수할 여력이 있다"며 "여기에 현재 18.7%인 국내 주식 비중을 향후 5년간 20%이상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 주식투자는 앞으로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사들에 대한 지분율만 높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주주로서의 권한까지 적극적으로 행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올 초 의결권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책임투자팀)을 신설했고, 최근에는 의결권ㆍ주주권 행사 강화 방안을 공청회를 통해 공개하는 등 활발하게 준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주주총회에서도 대기업 사외이사 후보들을 낙마시키는 등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건수가 2009년(132건)보다 2배 이상(277건) 급증했다. 최근에는 한라그룹의 계열사인 만도가 부실기업인 한라건설을 우회지원에 나서자 소송을 벌이겠다는 의사를 밝혀 한라를 곤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따라 국민연금의 지분율이 10%에 근접하는 유한양행(9.89%) 제일모직(9.80%) CJ제일제당(9.57%) 한솔제지(9.46%) LG패션(9.45%) 한미약품(9.40%) 등 47개 상장사들에 대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유가증권 시장 기준)인 삼성전자(7.43%) 포스코(6.14%) 신한금융지주(7.28%) 네이버(8.91%) KB금융지주(8.92%) 등 5곳과, 2대주주 지위를 확보한 현대차(6.99%) 현대모비스(7.17%) 기아차(6.01%) SK하이닉스(9.41%) LG화학(7.69%) SK이노베이션(8.59%) LG전자(9%) LG디스플레이(6.1%) 등 8개사는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런 국민연금의 행보에 "자칫 연금 사회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나 다름없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결국 기업을 직접 감시하고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져 매우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1%도 안 되는 적은 지분으로도 기업을 지배해온 기업 총수들로서는 국민연금의 지분율 상승은 매우 위협적인 것"이라며 "앞으로는 기업이 등기이사를 임명하려고 해도 국민연금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국민연금의 권한은 점점 더 막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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