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거지야?" 장난감을 사달라는 여섯 살짜리 딸에게 "안 된다"고 답한 김선일(가명ㆍ30)씨는 이 같은 딸의 반응에 말을 잇지 못했다. 종합유선방송업계 1위를 다투는 태광그룹 계열 티브로드의 유니폼을 입고 케이블TV 설치 일을 하지만, 한 달 월급이 130만원에 불과한 하청업체 직원의 현실이다. 2005년 이 일을 시작한 김씨는 원청(티브로드)이 하청계약을 바꾸거나 하청업체 사장이 바뀌는 등의 이유로 8년 새 6번이나 다른 고용계약을 맺었다. 근속이 쌓이지 않아 월급은 제자리걸음이고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2010년 원청업체가 하청계약을 끊어 하루 아침에 해고된 김씨는 그 때 쌓이기 시작한 빚 때문에 지금까지 공과금도 제때 내지 못한다.
김씨처럼 다단계 고용 구조에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급격히 늘면서 노동시장 하향 평준화와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8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대표적인 간접고용인 용역ㆍ파견 근로자가 2002년 42만6,000명에서 지난해 89만6,000명으로 10년 새 두 배 넘게 급증했다.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며 통계청 조사에서 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원청회사에 가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도 32만6,000명(2010년 고용노동부 조사ㆍ300인 이상 기업)에 달한다. 정부 통계에 잡히는 간접고용 노동자만 120만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6.7%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통계에서 빠져나간 노동자들을 다 합치면 전체 노동자의 10%를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간접고용은 사업주(원청)가 용역ㆍ파견ㆍ하청업체와 계약을 맺어 노동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은 원-하청 계약에 따라 '합법적으로' 쉽게 해고된다. 하청에 재하청으로 내려갈수록 임금은 낮아지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사용자가 누구인지도 모호해진다. 비정규직보호법은 기간제ㆍ시간제 비정규직에만 해당될 뿐, 이들은 비켜간다. 산업재해 사망자의 대다수가 하청 노동자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고용불안 저임금에 온갖 위험까지 떠안고 있는 것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간접고용은 외환위기 이후 공공기관들이 '민간위탁'이라며 확산에 앞장섰고 금세 민간으로 번졌다. 전세계적으로도 확산되는 추세지만 청소ㆍ경비 등 단순 업무뿐 아니라 상시적ㆍ핵심적 업무, 제조업 유통업 서비스업 등 전 산업, 심지어 공공부문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독일 등 선진국에선 정부, 노조, 법의 보호막이 작동하지만 우리는 보호막의 사각지대에 있다.
전문가들은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온 삼성(삼성전자서비스)과 태광그룹(티브로드)에서 최근 하청 노동자 노조가 생겨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사회 간접고용 문제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권영국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고용과 사용을 분리한 간접고용이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금지하고 있는 '중간착취'를 허용해 노동시장과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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